S STORY
고지혈증 치료제,
복용하는 만큼 혈관에 도움이 됩니다
콜레스테롤 치료와 연구의 새 길 열어가는 ,이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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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학 교수(심장내과)는 요즘도 협심증이 있는 70대 이상의 어르신 환자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 연배에서 협심증이 악화되면 급사 같은 여러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과대학 본과 3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그림자가 보여서다. 심한 흉통을 호소했던 할머니는 일주일 만에 주무시다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막 의학에 입문한 의대생은 공부에 치여 신경 쓸 틈도, 아는 것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한 번씩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어르신 환자를 만나면 할머니가 떠올라 더 똑바로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이다. 인내심이 강한 편에 공부가 적성이라고 생각해 의사의 길을 선택했던 그는 그 기질대로 10년 넘게 기초연구에 정진하고 있기도 하다.
에디터 이나경 포토그래퍼 최재인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뚱뚱하거나 고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아는 채식주의자 몇은 고지혈증으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뚱뚱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중성지방이 높기가 쉽습니다. 음주와 과식은 중성지방에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콜레스테롤은 튀긴 음식, 기름기 많은 고기, 과자, 디저트 같은 음식들이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지만 음식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결정하는 건 약 20%뿐이고, 3분의 2 정도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분들은 약을 먹었을 때 대부분 수치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목표한 만 큼 수치가 안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약이 잘 안 듣는 특수한 경우도 있습니다. 치료가 잘 안되는 분들 중에는 유전적인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저한테 오는 환자들 중에는 약에 잘 반응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있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극심하게 높은 분들이 상당수입니다. 약을 먹기 전의 수치가 심하게 높은 경우에는 유전적인 문제도 의심합니다. 그런 분들의 가족력 중에 심한 고콜레스테롤혈증 또는 심혈관질환이 있다면 유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콜레스테롤혈증에도 유전적인 문제가 있네요. 사례로 말씀해주신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40세쯤 된 남자 환자 한 분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았지만 무시하고 지내다 우연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전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자기 몸에 관심을 갖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콜 레스테롤)이 300mg/dL 이상 나오는 상태였는데, 다행히 치료가 잘됐습니다. 그 후로는 고콜레스테롤혈 증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습니다. 유전적인 문제에 의한 고콜레스테롤혈증은 한 사람의 진단과 치료를 통해 가족 내 다른 구성원도 동시에 치료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통계적으로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이 유전될 확률은 50% 정도입니다. 이 질환 환자들 가운데 약 20%에서 아킬레스건이 튀어나오는 황색종 증상이 있습니다.
유전적인 문제 때문에 고콜레스테롤혈증이 생기더라도 약으로 해결되나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특수한 유전 문제라도 상당수 환자는 먹는 약으로 조절됩니다. 검사상 특수 유전으로 강하게 의심되거나, 부모나 형제, 자식 중에 비슷한 경우가 있는 가족력이 확인되면, 이들 가족에게 알리고 다 같이 열심히 치료해야 합니다. 이때 치료 목표는 단순히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으로 발전하는 길목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고콜레스테롤혈증, 고혈압, 당뇨병 같은 질환의 종착역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등의 심뇌혈관질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운동, 금연, 혈압약 먹기 등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심혈관 위험도가 높은 사람이 고지혈증 치료제(스타틴)를 먹는 것은 고지혈증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책입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고지혈증 환자는 약을 꼭 잘 먹는 게 중요하겠네요. 얼마나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나요?
치료약을 한 달 정도 먹으면 약의 최고 효과의 대략 80%, 두 달 정도 먹으면 90% 이상 나옵니다. 심혈관질환은 세포들이 증식하고 혈관 내부가 좁아지면서 문제가 생기는데, 콜레스테롤은 혈관세포를 증식시키는 땔감 역할을 합니다. 치료약을 꾸준히 유지하면 이런 땔감 공급을 차단해서 혈관이 좁아지는 걸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맥경화에 의한 심혈관질환 발생 확률이 높은 환자에서는 오랫동안 또는 평생에 걸쳐서 약 복용을 권고합니다.
일부에선 “한 번 약을 먹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더라”라는 속설에 솔깃해 약 먹는 것을 주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조언하시나요?
약 먹기 싫은 마음을 이해하지만, 치료약이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게 좋습니다. 심혈관질환을 포함해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은 막대한 연구 예산을 통해 중요한 건강 지표들을 호전시킨다고 증명된 약들입니다. 심장내과에서 쓰는 약 중에는 지속적으로 쓰는 것이 많은데, 거기에 거부감을 가진 환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해드립니다. 약을 지속적으로 먹는 것이 제일 좋고, 먹다가 그만두면 2번째로 좋고, 약을 시작하지도 않는 건 제일 나쁘다고요. 쉽게 설명하면 학교 다니는 것과 비슷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배우는 걸 못 끊어서 중학교에 가는 게 아니잖습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자신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니까 공부를 계속하는 겁니다.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의 치료제는 학교교육처럼 치료한 기간만큼 혈관에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 콜레스테롤 배출에 관한 좋은 연구 결과를 내놓으셨습니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성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번 논문은 발표까지 5년 정도 걸렸는데요. 어떤 유전자가 콜레스테롤 배출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는가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동맥경화나 고지혈증에 대한 기초연구를 10년 넘게 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으로 기전을 연구 중입니다. 그런데 기초연구가 힘든 건 결과를 얻기까지 수년씩 걸리기도 하고, 그렇게 해도 결과가 안 나오기도 한다는 겁니다. 의과학 연구자에게 국내 환경은 녹록지 않은 편인데, 국가 미래나 학교 발전을 위해서도 기초연구에 대한 장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혈관질환과 고지혈증에 대한 유전학 연구를 10년 전부터 해 왔는데, 앞으로도 이 분야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명의의 특강
고지혈증
고지혈증 치료,
심혈관질환 막는 가장 좋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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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고지혈증은 소리 없이 심장 건강을 위협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당장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한 이유 입니다.
글 이상학 교수(심장내과)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에 들어온 경고등
우리 몸의 대표적 지질인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은 혈액에 녹지 않아서 개별적으로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지단백 (리포프로틴, Lipoprotein) 입자에 담겨 이동합니다. 혈액검사를 시행해 이 지단백 입자에 담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양을 측정하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수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총 콜레스테롤 240mg/dL, 중성지방 200mg/dL, 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LDL-콜레스테롤) 160mg/dL 이상일 때 고지혈증으로 정의합니다.
혈액 안에 고밀도 지단백(HDL) 입자 개수가 적거나 이 입자에 담긴 콜레스테롤의 양이 적은 경우에도 심혈관 건강이 나쁘다고 오래전부터 보고되어왔습니다. 따라서 HDL-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로 분류해 저HDL-콜레스테롤혈증과 고지혈증을 합쳐서 이상지질혈증 이라고 합니다.
고지혈증, 동맥경화성 질환의 주요 원인
동맥경화는 혈관벽이 안쪽으로 점차 두꺼워지는 질환으로, 일부 환자에서는 파열되어 혈전에 의한 급성 심근경색증 같은 심각한 사태를 초래합니다. 협심증, 심근경색증, 뇌졸중 등의 동맥경화성 질환이 고지혈증과 관계가 깊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로 증명되었습니다.
1913년 러시아 과학자 에니치코프는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 발생에 중요한 범인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후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진행된 대규모 집단 종적(추적) 연구인 ‘7개국 연구’와 ‘프래밍험 심장연구’에서는 혈중 콜레스테롤이 심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이며, 여기에는 음식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미국 생화학자 콘래드 블로흐는 세포에서 콜레스테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해 1964년 노벨상을 수상했고, 미국 과학자 브라운과 골드스타인은 LDL 수용체 연구로 1985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20세기 전반에 걸쳐 진행된 콜레스테롤과 동맥경화에 대한 여러 연구들은 치료법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고지혈증의 치료 원칙은 한마디로 ‘높은 위험-높은 이익’입니다.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높은 사람이 고지혈증 치료를 하면 치료의 이익이 크고, 심혈관질환의 위험도가 낮은 사람은 치료해도 이익이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고 고지혈증 치료제(지질강하제 혹은 스타틴)를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따져서 치료제 복용 여부를 결정합니다.
심혈관질환의 위험도는 나이(고령), 성별(남성), 심혈관질환 가족력, 고혈압, 당뇨병, 흡연, 고콜레스테롤혈증, 저 HDL-콜레스테롤혈증 총 8가지 요인으로 예측하는데, 각 각의 요인에 개별 점수를 매겨 총점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다만 협심증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이 이미 있는 사람은 10년 재발률이 30%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다른 위험 요인의 유무와 관계없이 고지혈증 치료제의 최우선 투여 대상이 됩니다.
심혈관질환이 없는 사람이 위험요인을 여러 개 갖고 있으면 심혈관 위험도가 높고, 위험요인이 없거나 한 개 정도 갖고 있다면 위험도가 낮습니다. 예컨대 고혈압과 당뇨병이 있는 60대 남성 흡연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라도 심혈관 위험도가 높아서 약물치료의 대상이지만, 20대 여성에서 아무 위험요인 없이 콜레스테롤 수치만 높다면 약물치료를 하지 않습니다.
“약을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더라.” “약을 오래 먹다 보니 몸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 고지혈증 환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지만,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며 그 자체로 심리적인 해악을 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고지혈증에서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꾸준히 유지하는 이유는 환자에게 주는 이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할 것 같아 약물치료를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최근 여러 연구에서 고지혈증 치료제를 복용하다가 중단한 사람과 처음부터 먹지 않은 사람을 비교한 결과, ‘유산 효과(Legacy Effect)’에 의해 전자의 경과가 후자보다 더 좋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만큼 고지혈증 치료제 복용은 중요합니다.
고지혈증 치료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약은 100명 중 1-5명 에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부작용의 정도는 다양하지만, 발생 빈도가 높으면서 정도가 심한 부작용은 거의 없으며, 그런 약은 잘 출시되지 않습니다. 또한 고지혈증 치료제는 심혈관질환 예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약 때문에 몸이 나빠졌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약을 복용한 덕분에 몸이 현재 상태로 유지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물론 흔하지 않은 부작용이라도 겪는 당사자는 힘들 수 있으므로 부작용이 있다면 주치의와 상의해 자신에게 맞는 약으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고지혈증 치료에서 비약물치료(생활습관 교정)의 중요성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생활습관 교정은 식사요법과 운동이 있으며, 식사요법은 한마디로 “피할 음식을 피하는 것”입니다. 매스컴에서 고지혈증에 좋은 음식을 많이 홍보하지만, 이런 음식을 챙겨 먹는 것보다 피해야 할 음식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고지혈증 환자가 피해야 하는 트랜스 지방과 포화지방은 튀긴 음식, 동물성 지방, 과자와 디저트에 많이 들어 있습니다. 과당과 술은 중성지방 수치를 올리기 쉬우므로 섭취를 제한해야 합니다.
운동은 고지혈증 수치를 조절하는 효과가 크진 않지만, 고지혈증 치료의 최종 목표인 동맥경화와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데 상당히 강력한 무기이므로 반드시 병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상학 교수
심장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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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세브란스병원> 2023년 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