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을 살려 병을 잡는 새 길을 뚫는다

위암 치료의 권위자, 이용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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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성위염에서 장상피화생으로, 다시 위암으로 발전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헬리코박터 파일 로리 감염치료는 이러한 진행을 차단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20세 이상 한국인 가운데 이 균 에 감염된 이들의 비율은 무려 55%에 이릅니다. 차츰 낮아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20% 미만인 미국에 비해 아직도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더 큰 주의와 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의 위암 발생률은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었다. ‘강산이 바뀔 만한’ 시간이 흘렀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10만 명 가운데 55명꼴로 이 무시무시한병에 걸린다. 하지만 사망률 쪽으로는 얘기가 다르다. 암으로 목숨을 잃는 환자의 숫자가 무려 30%나 줄었다. 사망률만으로는 세계 50위권이고, 발생률 대비 사망률로는 단연 최저 수준이다. 이용찬 교수(소화기내과)는 ‘조기 발견’을 이런 마법의 일등 공신으로 꼽는다. 암이깊고 넓게 번지기 전에 찾아 처리하는 까닭에 희생자가 큰 폭으로 줄었다는 얘기다.


정말 ‘조기 발견’입니까? 의료진의 탁월한 솜씨와 첨단기술 덕이 아니고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치료 기술과 장비를 갖춘 것도 사실이지만, 정기적으로 5대 암을 무상으로 살펴주는 국가암검진 프로그램의 기여가 가장 크다고 봐야 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검진을 받는 분들까지 합치면 마흔 살이 넘는 한국인 가운데 75%가 2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는다는 뜻인데, 이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자연히 초기 단계에서 위암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만큼 치료 효과도 높아지게 마련이죠.


발병률까지 떨어져야 뿌리가 뽑힐 텐데, 무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요?
저처럼 위나 식도를 보는 소화기내과 의사들은 위축성위염이나 장상피화생 같은 전암 병소를 차단하는 게 상책이라고 봅니다. 위에 염증이 심해지면 위벽이 얇아지는 위축성위염이 되고, 그게 더 깊어지면 장 점막처럼 모양이 바뀌는 장상피화생으로 발전하거든요. 그다음은 위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요. 결국 염증을 다스리는 게 관건인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 치료야말로 지금까지 알려진 방법들 중 위암 발생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기초연구는 물론이고, 그 결과를 적용하는 중개연구와 임상연구를 지속해왔습니다.


아, 무슨 요구르트 광고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내과의사 마셜(Barry J. Marshall)과 병리의사 워렌(J. Robin Warren)의 연구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에 위암 발병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헬리코박터 유병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세계보건기구가 이 균을 위암의 제1군 발암인자라고 공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이 균이 위암을 일으키는 과정을 추적하는 게 연구자들의 관심사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공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만, 차츰 그 너머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균에 감염되지 않은 이들도 위암에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외에도 위암과 관련된 다른 세균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지요. 요즘은 위장관에 있는 온갖 세균의 역할을 두루 탐색하는 세균총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소화기에 사는 세균만 해도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일 텐데요?
대용량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이 발전하면서 연구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몸 안에 한데 어울려 사는 균들 가운데 득이 되는 녀석들은 북돋아주고, 반대로 해가 되는 쪽은 없앨길을 찾자는 게 개괄적인 방향입니다. 소화기 영역에서만 봐도 비만, 염증성 장질환, 대장암, 치매 등의 질환과 위장관세균총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단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위암 환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균을 구별해낸다면 그걸 일종의 생체표지자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무조건 2년에 한 번 검사를 받는 게 아니라, 그 균의 분포를 기준으로 위험도를 분류하고 검사 기간과 횟수를 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제 연구 단계라면 실제로 소화기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이기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임상에 적용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면역부전 또는 결핍 환자에게 장염을 일으켜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위막성대장염(Pseudomembranous Colitis) 치료만 해도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항생제를 쓰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분변이식술’을 써서 좋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의 대변에서 이로운 세균들만을 추출해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입니다. 항생제와 달리 유익한 세균까지 다 죽인다든지 균의 내성을 키울 위험도 없습니다. 요즘 한국인들에게도 자주 발생하는 궤양성대장염, 크론병, 베체트병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위암을 앓았던 이들이 신경 써야 할 점들을 좀 짚어주세요. 전문가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첫째로, 위암이나 전암 병소인 선종이 생겼던 분들은 재발 가능성이 3-5배에 이릅니다. 따라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까지 추적 검사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절제가 아니라 내시경치료를 하신 분들은 더 관심을 두는 게 좋습니다. 둘째로, 아는 만큼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다들 알고 계시지만 실행하지 않아 병을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셋째로, 위암이 나았다고 해서 다른 암이 생기지 않으리라 예단해선 안 됩니다. 꾸준한 검진으로 중복암의 위험을 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잘 먹고 배출하며, 적절한 운동을 거르지 않는 게 필수입니다. 이 4가지만 기억해도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습니다..


식도암에도 경험이 많으시죠? 그쪽도 위암만큼 치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른 편인가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편입니다. 한국인 식도암의 95%가 편평상피암이라는 종류의 암입니다. 서구에서 많은 선암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표가 떨어지는 빈곤 지역이나 음주, 흡연, 뜨거운 차를 많이 마시는 민족에서 잘 나타나는 형태죠. 발생 빈도도 무척 적은 편이어서 10만 명당 5-6명 정도입니다. 식도는 15-20cm 정도 되는 관인데, 장막이 없어서 암이 자리 잡으면 주위로 쉽게 퍼져나갑니다. 식도가 위치하는 가슴이 워낙에 좁고 작은 공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도 있어서 숙련된 전문가가 신경 써서 보지 않는 한, 내시경으로도 조기발견이 어렵습니다. 케이스가 적으니 관심이 덜 미치고, 일찍 찾아내기 어려우니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절망적으로 들립니다. 식도에 생기는 암이라면 식습관이라도 바꿔야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렵긴 하지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내시경 장비가 좋아지고 식도암에 익숙한 내시경 의사들이 배출되면서 조기 발견 사례들이 늘고 있습니다. 내시경치료 기술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고요. 위암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발전이 아예 없는 건아닙니다. 식생활에 관해서는 무얼 먹을지 말아야 할지보다 균형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골고루 갖춰진 음식을 충분히 씹어가며 천천히 먹을 필요가 있습니다. 식사 후에는 몸을 움직여 남는 영양분이 몸에 쌓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담배는 금물입니다. 물담배를 많이 피우는 중동국가들에 식도암 환자가 넘쳐난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요즘 위장관세균총을 연구해 새로운 소화기질환 치료법을 찾 아내는 노력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득이 되는 세균은 북돋아주고 해가 되는 세균은 없애자는 거죠.”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위암 명의의 특강

내시경 장비와 술기의 발달, 위암 치료 성적 높인다

한국인에게 위암은 발병률과 사망률이 높다는 점에서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내시경 기기의 눈부신 발전으로 조기 진단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수술 방법과 항암제가 나날이 개발되고 있기에 희망적인 면이 많다.

 이용찬 교수(소화기내과) 포토그래퍼 최재인



한국인 암 환자 5명 중 1명은 위암이다. 위암 환자의 평균 연령은 51세이며, 20대 위암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위암이 흔한 이유는 무엇일까? 맵고 짠 음식 섭취, 과도한 음주, 흡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 감염 등이 한국인에서 위암의 발생 원인으로 흔하게 꼽힌다.소화가 잘 안 되거나 명치 부위의 통증, 속 쓰림, 체중 감소, 흑색변, 구토 등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 증상 없이 지내다가 덜컥 암 선고를 받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위암 증상은 위염이나 위궤양 같은 일반적인 위장관 질환의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증상만으로 조기에 진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기적인 검진으로 조기에 진단받는 것이 중요하며, 실제로 조기 위암은 검진 중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체 위암 중 조기 위암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위암 환자의 약 50%가 조기 위암으로 진단받는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조기 위암은 30% 정도에 머무르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정기적 내시경검사, 위암 조기 진단의 핵심 비법
만 40세 이상 성인의 경우,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2년마다 위 내시경검사나 상부위장관조영술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상부위장관조영술은 내시경에 비해 고통이 적고 위의 전체적인 병변 형태를 그릴 수 있으며, 내시경검사에 따르는 위험이 높은 환자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병소가 작을 때는 진단의 정확성이 다소 떨어지며, 내시경과 달리 의심 병변의 조직을 바로 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위암 조기 발견에는 위 조영술보다 내시경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소화기 증상이 있거나 위암 가족력 또는 위암의 선행 병변이 있는 경우에는 만 40세 미만이거나 이전 검사 후 2년이 경과하지 않았더라도 일찍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내시경검사가 고통스럽고 불안한 사람은 수면내시경(진정내시경)으로 좀 더 편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암의 특수한 성질을 이용해 암을 진단하는 새로운 내시경 장비가 개발되어 일반적인 시야로 확인할 수 없는 위암 병변까지 찾아내고 있다. 또한 캡슐 내시경이 개발되어 환자가 고통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식도와 위는 물론 일반 내시경검사로 볼 수 없었던 소장까지 생생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위암 진단 후에는 병기를 설정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해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고주파의 초음파 진동자를 내시경 말단에 부착해 초음파검사를 하는 내시경 초음파를 비롯해 복부 전산화단층촬영검사, 복부 초음파, PET-CT, 복부 MRI 등을 시행해 위암의 위벽 침윤 정도, 위 주변의 림프절 전이나 주변 장기의 암 침습 여부 등을 확인한다.


만 40세 이상 성인의 경우, 국가암검진사업을 통해 2년마다 위 내시경검사나 상부위장관조영술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식도, 위, 십이지장의 점막 구조를 육안으로 직접 관찰하는 내시경검사는 위염, 소화성 궤양, 위암 등의 질환을 진단할 뿐 아니라 필요시 기구를 이용한 조직생검을 시행해 위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을 확진할 수 있다.


내시경치료술, 최소 침습적 치료법
암이 파고든 정도가 점막층 또는 점막하층에 국한된 조기 위암 중 병변이 작고 다른 부위의 전이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내시경치료술(내시경점막절제술, 내시경점막하박리술)로 수술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내시경치료술은 마치 생선회를 발라내듯 암 부위만 도려내는 치료술로, 점차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전신마취 없이 시술이 이루어지므로 입원 기간도 짧고 치료비 부담도 적으며, 흉터가 전혀 남지 않고 감염이나 수술 합병증에 대한 위험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위를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에 암 절제술과 비교했을 때 환자의 삶의 질이 월등히 높다. 암을 도려내면서 생긴 위궤양은 한 달 정도 위궤양 약을 복용하면 큰 문제없이 아물게 된다. 수년 동안 세브란스병원의 치료 성적을 보면 조기 위암에서 내시경점막절제술은 완치율이나 재발률에서 수술과 거의 유사한 성적을 내고 있다.
내시경치료술이 어려운 경우에는 레이저나 플라스마 빔 등을 이용해 조직을 태워 없애는 소작술 치료, 광과민제를 이용한 광역동 치료 등을 시행해 병변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이 아직까지는 림프절 전이를 100%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최소 침습적 치료술은 복강경수술과 함께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내시경으로 진행성 위암 치료 돕는다
내시경치료술이나 수술로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는 면역치료,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등의 복합 요법을 적용해 긍정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내시경치료가 부분적 도움을 줄 수 있다.
위암이 진행되면서 암 덩어리가 위장관을 막아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경우, 과거에는 소장을 위에 연결하는 수술을 시행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전신마취와 개복수술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 현재는 내시경을 이용한 풍선확장술이나 탄력을 가진 고강도의 도관(스텐트)을 위장관에 넣어줌으로써 환자가 편안히 식사를 하도록 돕고 있다.
아울러 위암 병변에서 다량의 출혈이 일어난 경우에는 내시경을 이용해 전기, 플라스마 빔, 레이저 등을 조사해 지혈시킬 수 있으며, 내시경시술로 지혈클립이나 지혈제를 직접 주입해 위암으로 인한 합병증을 치료하기도 한다.




식도암도 내시경으로 치료한다?

다른 위장관의 악성종양과 비교할 때, 식도암은 경과가 특히 나쁜 편이다. 우선 식도는 장막이 없어서 암세포가 주위 기관으로 퍼지기 쉬우며, 식도 주위에는 기관, 기관지, 폐, 대동맥, 심장 등 중요한 장기들이 근접해 있다. 암이 진행되어 식도벽을 뚫게 되면 이러한 핵심 장기로 암이 빨리 퍼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병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완치가 어려우므로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과적 수술로 식도를 완전 절제하는 것이 완치율을 높이고 재발률을 낮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병변의 침윤 깊이가 점막층에 한정되어 있는 조기 식도암에서는 내시경치료술로도 완치에 이를 수 있다.

내시경치료술은 식도 완전 절제로 인한 연하곤란, 위-식도 역류, 덤핑증후군 등의 후유증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즉 위암과 마찬가지로 식도암에서도 조기 진단과 내시경치료술이 완치와 환자의 삶의 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특급 비책이 될 수 있다.
일부 진행성 식도암에서도 내시경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종양이 자라면서 식도를 막아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질 수 있는데, 내시경으로 식도에 인공 도관(스텐트)을 삽입하는 치료를 시행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