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불량에서 위암까지,
소화기질환의 뿌리를 캔다
“아주 오래된 같은 증상, 예를 들어 소화불량이 굉장히 오래됐다면 중한 병일까요, 아닐까요?” 이상길 교수가 묻는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시절부터 이런 문답을 좋아하지 않았다. 출제자가 교묘하게 파놓은 함정을 요리조리 피해 정답을 딱 내놓아야 하는 구조 자체가 못마땅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는 그야말로 아찔하다. 특히 쉬운 정답을 틀렸을 때 낭패감은 더 커지는 법. 하는 수 없이 우물쭈물 답을 찍는다.
“중한 병이 아닐까요? 오래됐다면서요.” 역시, 오답이다.
“중한 병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암일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런 경우라면 몇 년씩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요. 암은 진행하거든요. 암은 폐색이나 염증, 진행하는 통증 등으로 이어지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 소화불량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5년 넘게 되풀이하는 식이라면 기능성 질환일 공산이 큽니다. 환자는 긴장하고 걱정할지 몰라도, 소화기를 공부한 전문가들은 오히려 큰 병이 아닐 거란 판단을 내립니다.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환자 100명 가운데 정말로 암과 연관된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는 1명쯤 될까 말까 하니까요. 경험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예요.
정체가 궁금해요. 소화불량이란 도대체 뭘 가리키는 말입니까? 왜 생기는 거죠?
기본적으로 명치 부위 불편감이나 통증을 가리키는데, 굉장히 광범위한 증상을 아우릅니다. 더부룩하다는 말 하나만 해도 식후포만감, 팽창감, 조기포만감처럼 여러 갈래가 있어요. 속쓰림, 메스꺼움도 환자들이 자주 호소하는 증상이죠. 원인은 다양합니다.
위암이나 췌장암 같은 종양, 염증, 가끔은 약도 소화불량을 일으켜요. 소염진통제나 감기약, 항생제, 골다공증 약 등을 먹으면 더러 속이 메슥거리고 소화가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샅샅이 검사해도 뾰족한 이상을 찾기 어려운 소화불량도 있는데 그게 넉넉잡아 절반쯤 돼요. 흔히 말하는 기능성 소화불량이죠.
원인이 뚜렷하지 않으면 환자도 답답하고 의사로서도 접근하기가 어렵겠어요.
그렇죠. 그래서 증상이 얼마나 오래됐는지에 이어 지금까지 적절한 검사를 받아왔는지 확인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은 최소한 2년에 한 번씩은 위내시경을 하는 걸 권장하는데 전체 인구의 약 80%가 따라서 해요. 여기에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 생애전환기 검사를 최근까지 쭉 받아온 분이면 실제로 심각한 병이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검사를 거른 분들 가운데 소화불량이 최근에 더 심해진다든지, 패턴이 변한다든지, 암이 생길 확률이 높은 50~60대라든지, 아니면 가족력이 있다든지 하면 검사를 더 해보죠. 거기서도 이렇다 할 문제가 없으면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진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특별한 이상이 나오지 않는 걸 도리어 불안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문제가 없다면 만세를 불러야 할 텐데, 어째서 불안해하시는 걸까요?
심각한 질환일 수도 있는데 찾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분들께는 큰 병이 아니라는 확신을 줘야 하는데, 경험이 많지 않거나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게 좀 힘들어요. 의사에게도 일종의 확률 게임이어서 방어적이 되기 쉽죠. 기능성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100% 확실한 건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면 환자는 뒷부분에만 매달려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달리 방도가 없다 싶을 때는 단호하게 확인해드리는 편입니다. 끊임없이 CT를 찍어가며 방사선에 노출되게 둘 수는 없잖아요. 물론 놓치지 말아야 할 증상들을 모두 체크해서 기록하고 약을 조절해가며 지켜보는 건 기본이죠.
수없이 많은 소화불량 환자들을 만나셨으니, 특별한 케이스도 보셨겠어요.
간혹 아주 드문 이유로 속이 아픈 분들이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소화가 안 되고 체중이 쭉쭉 줄어들어서 암을 걱정하던 환자가 찾아오셨어요. 소화제도 타다 먹어보고 온갖 검사를 다 해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음식이 십이지장을 통과해 내려가는 속도를 재봤더니 정상인보다 3배는 더디더라고요. 음식이 위에 가득 차서 내려가지 않고 위산은 계속 분비되니 배가 부르고 메스꺼울 수밖에요.
히스토리를 보니까 최근에 당뇨병 약을 바꿨더군요. 식욕을 떨어뜨리는 약이었는데 가끔 그 영향으로 위 운동이 거의 멈추다시피 느려지는 분들이 있거든요. 약을 끊고 나서는 금방 괜찮아졌어요.
소화기에 생긴 암을 내시경으로 찾아내서 떼어내는 치료도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위암을 내시경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2000년대였는데 불과 십수 년 만에 중요한 치료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 국민이 암검진을 받게 되면서 내시경치료 조건에 맞는 조기 암 환자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죠. 결과도 좋고 재발률도 수술한 경우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비교해서 데이터를 내본 적이 없어서 지금 그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세브란스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관련 분야와 협력체계도 잘 짜여 있어서 다른 기관의 동료들도 다들 부러워하죠.
"우리 국민 절반이 가지고 있는 만성위염이 장상피화생으로, 다시 위암으로 가는 고리를 어디서든 끊어야 해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서 중증으로 진행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가며 2년마다 내시경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겠죠. 그 길을 찾는 게 최근 연구 경향인데 제게 허락된 기간 안에 어떻게든 획기적인 진보를 이뤄보고 싶어요."
내시경치료를 하는 데 어떤 협력체계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내시경으로 암세포를 떼어내는 치료를 하려면 환자가 적어도 30분, 길게는 2시간까지 진정상태로 가만히 있어야 해요. 내시경을 들여다보다가 틈틈이 주사제를 투여해서 안정을 유지시키는 이중 부담을 져야 하니 치료하는 의사로서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세브란스는 마취통증의학과의 협조로 전담의사가 상주하면서 안정된 상태를 확보해줘요. 그만큼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거죠. 기도에 관을 넣지도 않고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으니 환자 입장에서도 훨씬 유리하죠.
지금은 다른 병원에서 마취가 어려운 환자를 우리 병원으로 이송 보낼 만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암부터 소화불량까지, 중병부터 경증까지 다 보시는데 어느 쪽에 더 신경이 쓰이세요?
불편한 걸 찾아내서 고친다는 점에서는 양쪽 다 마찬가지지만, 암처럼 중증질환이 더 주목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경증질환 쪽에도 그만한 관심이 가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어요. 위암보다는 소화불량 쪽이 환자 규모도 훨씬 크고, 섬세한 관찰과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많거든요.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 심층진료제도가 생기긴 했는데, 주로 희귀질환 대상이어서 소화불량은 해당 사항이 없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찌해볼 여지가 적기는 하지만, 진료를 담당하는 저로서는 다소 소외되고 있는 경증질환에 더 눈길을 주고 싶습니다.
명의의 특강 | 소화불량과 위암
잦은 소화불량, 소화제 찾기 전에 원인부터 찾아라
명치 부위에 자리한 장기에 발생하는 암도 초기에는 소화불량 증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소화불량은 다양한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나 증상이 있는 경우, 즉 ‘기능성 소화불량’이 원인인 경우가 제일 흔하다. 따라서 소화불량 증상만으로 암이 있는지 아니면 기능성 소화불량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절한 시점에 암을 감별하기 위한 검사가 필요하다.
소화가 안 된다고 모두 소화불량증은 아니다
우리는 명치 부위의 불편함이나 통증이 있는 경우에 “소화가 안 된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소화가 안 된다는 표현은 매우 모호해서 소화불량증, 변비, 설사, 과민성 장증후군 등 많은 질환으로 유발될 수 있으며, 의사들은 이러한 병들 가운데 일부만을 소화불량증으로 진단한다.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이것저것 집요하게 물어보는 이유는 어떤 질환으로 인해 환자가 소화가 안 된다고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소화불량증은 식후포만감, 조기포만감, 속쓰림과 통증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있으면 소화불량증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메슥거림, 구토, 팽만감, 잦은 트림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증상들은 건강한 사람들도 경우에 따라 몇 번씩은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증상들이 자주, 심하게, 장기적, 주기적으로 발생해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치료 대상이 된다.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소화불량
명치 부위에는 식도, 위, 십이지장, 간, 담낭, 췌장, 소장과 대장의 일부를 포함한 다양한 장기가 있어서 이들 중 어느 곳이든 문제가 있을 경우 소화불량이 생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위, 십이지장, 식도하부에서 기인한 소화불량이 다수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위와 십이지장에 생기는 소화성 궤양(위궤양, 십이지장궤양)이 많은 원인을 차지했으나, 최근에는 위식도역류질환이 늘어 나는 추세다.
명치 부위에 자리한 장기에 발생하는 암(식도암, 위암, 췌장암, 담낭암, 간암 등)도 초기에는 소화불량 증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소화불량은 다양한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나 증상이 있는 경우, 즉 ‘기능성 소화불량’이 원인인 경우가 제일 흔하다. 따라서 소화불량 증상만으로 암이 있는지 아니면 기능성 소화불량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적절한 시점에 암을 감별하기 위한 검사가 필요하다.
소화불량이 오래되면 위암으로 진행한다? "NO"
한국인에서 위암은 소화불량 증상이 있어서 검사했다가 발견되는 가장 흔한 암이다. 그러나 검사를 하게 된 원인인 소화불량이 위암 때문일 가능성은 매우 적고, 소화불량이 오래된다고 위암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위암이 암 중에서 흔한 편이고 내시경검사로 비교적 수월하게 진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조기 위암은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정기적인 암 검진으로 발견되는 대표적인 암으로, 완치율이 높다. 특히 최근에는 조기 위암 환자들 중 절반 정도는 수술하지 않고 위를 전부 보존할 수 있는 내시경치료(내시경점막하박리술)로 완치가 가능하다.
소화와 뇌는 연관이 많다
위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복부 CT, 혈액검사에서도 이상이 없는데, 소화불량증이 왜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일정량 이상의 음식을 먹은 뒤 포만감과 포만감을 넘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이다. 음식, 그리고 음식을 소화시키기 위한 위산과 소화액들이 위나 소장에 차게 되면 압력이 높아지고, 그 신호가 뇌로 전달되면 포만감과 불편함으로 해석되어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인들 가운데 포만감이나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양을 먹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위의 압박감이나 팽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 경우 위장의 팽창에 대한 과민성이 있다고 하며, 기능성 소화불량의 중요한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외에도 위장의 배출기능이 정상인보다 떨어져 있는 경우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위장, 소장, 대장의 다양한 신호들이 중추에서 해석되는 과정에서 부조화가 일어나 질환이 생긴다고 해서 이를 ‘소화기와 뇌의 상호작용 불균형(disorders of gut-brain interaction)’이라는 질환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그만큼 소화와 뇌는 연관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화불량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소화기 기관의 기능과 과민성뿐만 아니라, 중추와 자율신경계의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원인, 다양한 치료제
소화불량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소화불량이 흔하지만 암으로 진행하는 병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상이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와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 각각의 원인들에 대한 치료법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소화관의 운동이나 위장의 음식 수용능력이 저하된 경우에는 소화관 운동기능 촉진제를 사용한다. 위산과다와 연관된 속쓰림이나 명치 통증에는 위산분비 억제제, 점막의 염증으로 인한 불편감에는 점막보호제가 사용된다. 뇌와의 상호작용 불균형이나 자율신경계의 부조화 등이 문제되는 것으로 판단될 때는 신경조절제를 투여한다.
이렇게 치료약제가 다양한 이유는 소화불량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은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여러 약제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 치료 경험이 많고 소화기 기능질환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전문의에게 치료받는 것이 좀 더 도움이 된다.
소화가 안 된다는 흔한 증상 속에서 위암처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요 질환을 찾아내는 것은 의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적으로 증상이 비교적 장기간(최소 6개월)에 걸쳐 비슷한 정도로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면 암일 가능성은 적다. 단지 체중 감소, 구토, 혈변, 삼킴곤란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유의한 질환이 있을지 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기능성 소화불량증은 다양한 검사를 해도 명확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중대한 질환이 없다는 믿음을 주고 검사에서 이상이 없음에도 왜 불편한 증상이 지속되는지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
세브란스의 우월한 내시경시술 시스템으로 안전하고 완벽하게 조기 위암 및 식도암 치료
조기 위암의 내시경치료(내시경점막하박리술)는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으며, 주요 대학병원에서 시술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내시경치료 기술의 우월성은 전 세계에 알려져 있으며, 세브란스병원의 내시경시술도 이에 일조하고 있다. 내시경시술은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까지 소요되기 때문에 시술자가 안전하고 완벽하게 시술할 수 있는 마취/진정 시스템이 필수다.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어느 병원도 갖추지 못한 내시경시술 진정 전담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와 간호사팀이 상주하는 가운데 내시경실에서 시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별도의 비용을 청구할 수도 없지만, 추가 인력과 기계와 시스템을 구비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이 필요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오래전부터 환자의 안전과 완전한 시술을 위해서라면 조건 없이 투자해왔으며, 이러한 역사가 시스템 도입에 크게 작용했다.
이상길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조기 위암과 식도암의 내시경치료에서 가장 많은 시술을 담당하고 있으며, 국내 유수의 기관으로부터 내시경시술이 어렵고 시술 중 진정 수준이 유지되지 않는 다수의 환자를 의뢰받아 시술하고 있다.
우월한 내시경시술 시스템을 이용했을 때 시술 시간은 매우 단축되면서 치료 성공률은 높았고, 합병증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전체적인 시술에 대한 만족도가 향상되었다. 이런 사실은 모두 논문으로 보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