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혈액형 달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신장이식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개인의 질병 넘어 가족 모두의 삶 바라보는 이주한 교수
⚊

신장이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인가요?
신장이식의 대상은 의학적으로 ‘비가역적인 만성 신부전 환자’입니다. 조영제나 약물 부작용 등으로 신장기능이 급격히 저하 되었지만 원인을 제거하면 회복될 수 있는 급성 신부전은 일반적으로 신장이식의 적응증이 아닙니다. 만성 신부전은 신장기능이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회복되지 않는 상태를 뜻하며, 노폐물 대사나 수분 조절 등이 불가능한 말기 신부전에 이르면 투석이나 신장이식 같은 신 대체요법이 필요합니다. 만성 신부전을 일으키는 원인질환은 당뇨병과 고혈압, 사구체신염이 대표적입니다. 젊은 층에서는 사구체신염이, 60대 이상에서는 당뇨병이나 고혈압에 의한 신장 손상이 많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 유병률이 높아져 우려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신부전 환자들도 늘어 나는 추세인가요?
우리나라 신부전 환자는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배경은 고령화입니다.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장의 핵심 구조인 사구체는 태어날 때 이미 개수가 정해져 있고, 새로 재생되지 않습니다. 나이 들수록 신장기능은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짜게 먹는 식습관과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증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젊은 층의 비만입니다. 비만이 당뇨병과 고혈압을 유발하고, 10-20년 뒤 신장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당뇨병은 혈관과 신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남기기 때문에 당뇨병성 말기 신부전 환자는 합병증 위험이 매우 높고 장기 생존율도 낮은 편입니다. 현재 국내 말기 신부전 환자의 절반가량이 당뇨병성 신부전입니다.
고령 환자도 신장이식을 받을 수 있나요?
신장이식수술 자체에 연령 제한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전신 건강입니다. 기본적으로 전신마취와 수술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환자의 심폐기능이 양호해야 합니다. 이식 후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므로 중증의 전신 염증질환이나 감염질환 환자, 재발 우려가 있는 암 환자 등은 이식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이식 후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혈액투석 때문에 일주일에 서너 번, 하루에 4시간씩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환자가 신장이식 후 건강이 회복되어 직장에 복귀한다면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이고 사회적 차원에 서도 큰 유익일 겁니다. 따라서 신장이식은 수술의 위험도, 환자 상태, 투석 또는 이식의 예후, 면역억제제 복용에 대한 환자의 순응도,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요즘은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신장이식이 가능하다고 하던 데요.
우리 몸에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면역시스템이 있어서, 외부물질이 들어오면 몸 안의 항체가 이를 공격해 몸을 보호합니다. 내 몸의 항체가 새로 이식받은 장기를 타인으로 인식해 공격하는 것이 거부반응입니다. 신장이식에서 면역학적으로 가장 큰 장애물은 ABO 혈액형과 주조직적합성항원(HLA)으로, 이것이 맞지 않으면 초급성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혈액형이 다르면 신장이식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탈감작 치료를 통해 항체 수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면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이식이 가능합니다. 탈감작 치료란 혈장교환술을 통해 체내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항체를 걸러내고, 리툭시맙 등의 약제를 투여해 항체 생성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신장이식은 부부 사이의 기증이 많다 보니, 국내 생체이식의 3분의 1가량이 혈액형 부적합 이식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은 입원 기간이 길고 혈액 제제 등 의료 자원이 많이 소모되므로, 모든 환자가 무조건 혈액형 부적합 이식에 의존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혈액형이 맞는 기증자와 환자를 쌍으로 맞바꾸는 교환이식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조직적합성항원은 어떤 개념인지 낯섭니다.
주조직적합성항원은 쉽게 말해 사람마다 다른 인체의 면역학적 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산이나 수혈, 장기이식 등으로 자신과 맞지 않는 타인의 주조직적합성항원에 노출되면 이에 대한 항체가 생성될 수 있으며, 이러한 항체가 많이 생성된 환자를 고감작 환자라고 합니다. 고감작 환자들은 적합한 기증자를 찾기 어려워서 뇌사자 신장이식 대기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길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공여자가 있다면 탈감작 치료를 통해 생체이식을 시도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현실이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가 통계에 따르면 뇌사자 신장이식의 평균 대기 기간은 7-8년이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10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식이 필요한 환자 수에 비해 뇌사자 장기기증 자체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한 해 동안 새롭게 투석을 시작하는 환자 수는 2만 명에 육박하는 반면, 지난해 뇌사 기증자는 37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들이 기증한 신장 두 개를 모두 활용하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체 환자는 800명에도 못 미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본인이 생전에 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유가족이 반대하면 기증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또 한 해외에서는 심장 사망 후 장기기증(DCD)이나 적출한 장기를 보다 건강하게 보존하는 기계관류 기술 (Machine Perfusion) 등이 도입되어 활발히 시행 중이지만, 국내 현실은 법적 한계와 비용 등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 개선과 법적, 제도적 정비가 절실합니다.
말기 신부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료실에서 환자, 보호자들을 만나다 보면 신장 건강이나 이식에 대한 오해가 의외로 많습니다. “혈액형이 다르면 이식을 못 한다더라”, “이식해 봐야 얼마 못 쓴다더라” 등의 낡은 정보나 잘못된 소문에 갇혀 신장이식을 막연히 두려워하거나 지레 포기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해서,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아예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만성 신부전 환자가 혼자 끙끙 앓기만 한다면, 오히려 가족 전체의 일상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은 기증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과학적 근거에 따라 철저히 평가하므로 가족과 함께 병원을 찾아 상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 이것만은 꼭 지키세요
- 면역억제제는 이식 신장을 건강하게 오래 유지하기 위한 핵심 약물이므로 반드시 처방대로 시간 맞춰 복용한다.
- 부작용이 생긴다고 임의로 약을 줄이거나 끊지 말고, 반드시 주치의와 먼저 상의한다.
- 면역억제제는 다른 약물과 상호작용이 잦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다른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는 신장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임을 미리 알린다.
- 자몽은 약물 대사를 방해해 혈중 약물 농도를 변화시키므로 절대 섭취하지 않는다.

이주한 교수 이식외과
진료 분야 : 신장이식수술, 기증자 수술
⚊
혈액형 부적합 이식, 고감작 환자 이식 등 고난도 신장이식수술이 전문 분야로, 이식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진료실에서는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한 설명과 따뜻한 공감을 전하는 한편, 치료 결정 앞에서는 의학적 냉철함을 유지한다.
꾸준한 연구와 학술활동을 통해 자신의 판단이 주관적 경험이나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지 점검하며, 환자에게 가장 이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최근에는 장기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성 신장병 예방과 사회적 인식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월간 <세브란스병원> 2026년 7월호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