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세요, 소아뇌전증과 싸울 무기는 넉넉합니다 

소아뇌전증과 평생을 싸워온 명장, 이준수 교수

 

“나이가 어려서 시작해서 사춘기쯤 되면 없어지는, 그런 유형의 뇌전증이 몇 가지 있습니다. 약을 조금만 먹어도 잘 듣고 어느 시점이 되면 사라지는 거죠. 그런 경우는 천식처럼 잠깐 어려움을 겪을뿐, 일상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노벨, 알렉산더, 고흐 등 역사적으로 뇌전증을 앓았던 위인들을 찾자면 한이 없을 지경입니다. 오늘날의 과제는 난치성 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하느냐는 겁니다. 수술이든, 식이요법이든, 장치 이식이든, 약이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길을 찾는 노력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시작된 아기의 경기는 멈출 줄 몰랐다. 두뇌의 왼쪽,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100번 넘게 발작을 일으켰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사정은 딴판이었다. 뇌파의 궤적은 아기의 두뇌가 아직도 사납게 요동치고 있음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였다. 마취를 시켜 아기를 재우고 원인을 찾았다. 유전자검사 결과, 난치성 이주성 뇌전증을 일으키는 KCNT1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처방할 수 있는 약은 퀴니딘 하나뿐이었지만,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운 아기에게 현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생산을 멈춘 지 10년이 넘어서 어디서도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준수 교수(소아신경과)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아기에게는 단 하나뿐인 탈출구가 막힌 셈이네요.
희귀난치병센터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를 다 뒤졌어요. 재고가 좀 남았었는데 얼마 전에 다 떨어졌다더군요. 우리 병원 약무국에 다시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더니 반가운 소식을 주셨어요. 선생님들이 열심히 뒤지고 또 뒤져서 이만저만한 나라에 얼마쯤 남아 있는지 알아낸 거죠. 자기 일처럼 애써준 약사님들이 얼마나 고맙던지! 덕분에 퀴니딘을 구해서 아기에게 쓰고 있어요. 경과는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아직도 하루에 일곱 번 남짓 경기를 하지만, 재활치료까지 받고 있으니까요.

집요하시네요. 환자가 한둘도 아니고, 한 번 찾아보고 없으면 손을 털 법도 한데….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인 데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어찌 됐든 제가 주치의잖아요. 그 약이 아니면 환자가 큰일 나게 생겼는데 어느 의사가 적당히 시늉만 하겠어요. 상태가 좋아지긴 했어도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에요. 확보한 약이 3년 치뿐이라, 이제부터 퀴니딘의 의존에서 벗어나 더 나은 길을 찾아봐야죠. 논문에는 퀴니딘만 듣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저런 약들을 잘 조합해보니까 그 약만 쓸 때보다 한결 효과가 있더라고요. 첨단기술을 동원한 진단, 의사들의 치열한 연구 노력, 보호자의 신뢰와 협력, 간호사와 약사를 비롯한 동료 의료인들의 지원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이른바 ‘토탈 케어(total care)’로구나 싶더군요.


‘보호자의 신뢰와 협력’을 토탈 케어의 요소로 함께 꼽으시네요?
그게 없으면 뇌전증 치료에 성공할 수 없으니까요. 소아뇌전증의 35% 정도는 난치성입니다. 약을 먹는데도 발작이 계속되면 아빠 엄마로서는 속이 상할 수밖에 없어요. 더 좋은 방도는 없을까 여기저기 눈길을 주게 되죠. 하지만 거기가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오랫동안 소아뇌전증을 다뤄온 경험에 비춰보면, 주치의를 믿고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쪽의 결과가 훨씬 좋습니다. 어떤 치료법을 써서 목표했던 만큼 성과가 나지 않으면, 안타깝고 애가 타긴 의사들도 마찬가지에요. 적절한 시점을 택해 다른 길을 찾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게 마련이죠. 그런데 보호자들이 먼저 이리저리 움직이면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느라 시간과 노력, 경비를 낭비하기 쉬워요.

이제 막 진단을 받은 아기의 보호자에게 가장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해주세요?
우선 MRI나 유전자검사에서 나쁜 기형세포나 유전자 이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앞당겨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죠. 어리고 미숙한 아기가 발달 과정을 겪는 사이에 비정상적인 파장이 발생해 경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요. 유전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버리라고 합니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르면 열성유전이라고 해도 25%는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뇌전증을 앓는 부모가 같은 질환을 가진 아기를 낳을 확률은 4%에 지나지 않습니다. 뇌전증을 가졌을 뿐 다른 데는 다 건강하다면, 그게 유전될 가능성은 희박하단 뜻입니다.

하지만 경련을 가라앉히는 약은 너무 독해서 지능을 떨어트린다고들 하던데요?
경련하는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한 가지, 기껏해야 두 가지 약을 씁니다. 70%의 환자는 거기서 해결되고, 지능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경련이 없어지고 환자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니 때맞춰 약먹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약은 이미 철저한 검증을 마쳐서 임산부가 먹어도 될 만큼 해롭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에 가까운 정보에 마음을 빼앗겨서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아이는 자꾸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부감 없이 약을 먹고 경과를 의료진에게 정확히 전달해주는 편이 한층 현명한 처신입니다. 의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보호자들과 의논해가며 용량을 조절하고, 다양한 검사를 통해 최선의 방책을 찾아내겠죠. 혹시 난치성에 해당한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스테로이드를 쓰든, 수술을 하든, 식이요법을 동원하든, 장치 이식을 하든, 어떻게든 도우려 할 겁니다.

“믿고 지켜보자”고 말할 때는 의료진에게도 어떤 마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아뇌전증 분야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진단 분야만 하더라도 2017년부터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피검사로 확인하는 기법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로 뇌전증이나 발달장애를 갖게 되는지 간단한 혈액검사로 확인할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대응할 길이 열린 거죠. 국내에서는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소아신경과, 임상유전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검사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식이요법은 이미 오래전에 틀을 잡아서 의사가 처방을 하면 영양팀에서 정교한 식단을 준비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술 역시 케이스가 많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세브란스에 계십니다. 남다른 치료를 할 수단이 우리 병원에는 상대적으로 훨씬 많다는 얘기죠.

30년 가까이 현장을 누비며 환자를 봤으니, 이젠 거침이 없으시겠어요?
그럴 리가요. 지금도 섬뜩하거나 반성이 앞서는 순간들이 적잖은걸요.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보다 보니, 신경을 쓴다고 쓰는데도 사소한 부분들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입원한 뒤에 살피면 외래에서와 양상이 다른 경우가 드물게 있어요. 그럼 당장, ‘자꾸 경기를 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약만 주고 보낼 게 아니라 입원을 시켜서 정밀하게 검사를 해보았더라면’ 하는 반성이 들죠. 실제로 그렇게 해서 약을 바꾸거나 새로 조합해주면 증상이 썩 좋아지는 사례들도 적지 않아요. 그때마다 괜히 환자를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죠. 의사도 인간이니 어쩔 수 없이 놓치는 면이 있겠지만, 사소한 부분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명의의 특강│뇌전증
뇌전증 치료의 핵심, 정확한 진단과 성실한 약 복용

 뇌전증이 있으면 지능이 낮거나 학습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많이들 오해하지만, 선천적으로 대뇌기능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뇌전증 자체에 의해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류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소크라테스, 시저, 나폴레옹, 바이런, 도스토옙스키, 고흐 등은 모두 뇌전증 환자였다.
 이준수 교수(소아신경과) 포토그래퍼 최재인 

소아 뇌전증에서 적극적으로 수술치료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조절되지 않는 발작 기간이 길수록 뇌손상이 중첩되어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남기는 반면, 수술 후 회복되는 속도와 정도는 환아가 어릴수록 좋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반복되는 발작
뇌는 세포들끼리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활동하는 기관이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러한 전기적 신호가 적절하게 만들어지고 제어 되지만, 여러 원인에 의한 병적인 상태에서 뇌조직이 과다한 전기를 방출하면 발작이 일어난다. 발작은 뇌의 염증, 대사 이상, 뇌출혈 등뇌 활동에 영향을 주는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러한 이유 없이 일상생활 중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발작이 반복되는 질환을 뇌전증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의 0.5-1%에 이르는 높은 유병률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며, 이 중 약20-30%는 기존의 약물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알려져 있다.
뇌전증은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이 다양하므로, 가능하면 그 원인을 찾아 선행 원인을 교정해야 한다. 소아에서는 대개 유전적 요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산욕 기간 동안의 약물 노출, 감염, 손상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인지기능저하와 발육 지연 등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성인에서는 해마 경화증, 뇌종양,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뇌 손상, 뇌염, 뇌 수술 후유증, 뇌졸중, 임신중독증, 알코올 중독 등 후천적 원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언제 어디서든 발작이 나타날 수 있다
뇌전증은 치료하지 않아도 좋아질 수 있는 양성 뇌전증부터 뇌전증 자체가 정신 발달을 황폐화시키는 뇌전증성 뇌증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다. 보통 발작이 시작된 뇌 부위와 퍼져 나가는 부위, 발작의 종류와 원인, 발작이 시작된 나이, 병의 경과 등에 따라 약 100종류 이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병의 경과와 치료에 대한 반응이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뇌전증의 정확한 분류와 진단, 그에 따르는 치료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크게 뇌 전체에서 시작되는 전신 발작과 뇌의 일부분에서 시작되는 부분 발작으로 나눌 수 있으며, 발작중 의식 소실 여부에 따라 복합 부분 발작과 단순 부분 발작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뇌전증의 발작은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일반인들은 눈을 치켜뜨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뒤틀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입에 거품이 고이는 대발작을 주로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부분 발작이 더 흔하다. 부분발작 시에는 한쪽 얼굴이 씰룩거리거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뒤로 꼬인다거나, 멍한 상태에서 고개와 눈이 옆으로 돌아가면서 침 삼키는 소리를 낸다든지, 정신을 잃고 흐릿하게 무언가를 쳐다보는 듯하면서 손을 만지작거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의식이 소실되는 복합 부분 발작은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꿈을 꾸는 것 같은 상태를 보인다. 멍하게 한곳을 응시하고, 껌을 씹는 것처럼 움직이고, 옷을 줍고 중얼거리는 등의 행동을 연속적으로 한다. 때로는 이러한 증상이 있는 동안 걸어 다니기도 하며, 심하게 흥분해서 팔을 흔들고 옷을 벗으려고 하거나, 뛰고 소리치거나 공포로 움츠리는 경우도 드물게 나타날 수 있다.
전신 발작에서는 갑자기 폐에서 공기가 나오는 소리를 내면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일시적으로 몸이 경직되고 이후 경련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대발작과 몸이 굳어지는 강직 발작, 몸이 꿈적대는 간대 발작, 몸통이 앞뒤로 젖혀지거나 넘어지거나 손발이 마치 졸릴 때 갑자기 움찔거리는 것과 같은 근간대 경련 발작, 소아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눈을 깜빡이면서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는 결신 발작이 있다.


뇌전증 환자의 일상생활 수칙
 _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 수면 무호흡증과 같은 수면장애는 발작 조절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 습관을 유지한다.
 _ 술에서 깰 때 발작이 유발될 수 있고, 일부 항경련제는 술과 같이 작용할 때 매우 위험할 수 있으므로 금주하는 것이 좋다.
 _ 단순 감기를 치료할 때도 일부 약제가 경련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에게 항상 뇌전증 치료 사실을 알려야 한다. 또 다른 치료와 관계없이 항경련제는 반드시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_ 항경련제는 혈액 속에서 일정한 농도로 유지되어야 효과가 가장 크다. 따라서 주치의의 처방대로 제시간에 약을 복용하도록 한다.
 _ 대부분의 운동을 즐길 수 있지만, 운동 중 발작이 일어날 경우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 등산, 스키 등은 주의가 필요하며, 머리에 충격을 주는 운동은 피하도록 한다.
 _ 의식 소실이 있는 뇌전증을 앓는 사람들은 운전이 금지된다. 


환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킬 때, 이렇게 대처하세요
_ 발작이 멈출 때까지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주변의 위험한 물건은 치우고, 넥타이나 속옷 등 호흡에 방해가될 수 있는 의복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_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환자의 머리를 측면으로 돌려서 침과 이물질이 흘러나오게 한다. 이때 강제로 환자의 입을 열려고 시도하거나, 환자를 붙잡아 움직임을 멈추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경련이 멈춘 후에 호흡을 다시 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공 호흡을 시도해서도 안 된다.
_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거나 다른 발작이 곧바로 시작하는 경우, 경련이 멈춰도 깨어나지 않을 때, 환자가 상해를 입었거나 임신 상태라면 구급 차를 부른다.
_ 발작 시작 전 상황, 발작 시작 및 지속 시간, 발작 후 환자의 반응을 잘 살펴 응급 요원이나 의료진에게 알려준다.


병력 청취 후 뇌파검사와 뇌 MRI 시행
뇌전증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병력이다. 가끔 뇌전증과 비슷하게 발작 흉내를 내고 꾀병을 부리거나,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반복적인 의식 소실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뇌전증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뇌파검사를 비롯한 여러 검사들은 임상적으로 진단된 뇌전증을 진단할 수 있으며, 드물게는 검사에서 이상이 있어도 뇌전증이 발생하지 않는 환자도 있다. 따라서 진료를 받을 때는 발작 시간, 발작의 양상과 빈도, 발작 후 증상, 발작 유발 요인, 발작 시 이전 증상과의 변화 유무를 주치의에게 알리면 큰 도움이 된다.
뇌전증의 원인 및 발생 부위를 결정하는 데 필수 검사는 뇌파검사와 뇌 MRI다. 뇌파검사는 뇌전증 발작 동안 또는 발작이 없는 동안에 비정상적인 뇌파가 보이는지, 또 뇌의 어느 부분에서 이상 뇌파가 보이는지 알 수 있는 검사다. 그러나 실제로 뇌전증 환자라 하더라도 일반 뇌파검사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대개 절반밖에 되지 않으므로, 처음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타났어도 뇌전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으며, 반복 검사를 통해 비정상 뇌파 발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뇌 MRI는 뇌의 구조를 직접 볼 수 있으므로 뇌종양이나 해마 경화증 등 뇌전증의 중요한 원인을 차지하는 뇌의 이상을 발견하고, 필요하면 수술적 치료까지 시행할 수 있다. 그 외에 24시간 동안 환자의 발작 양상을 비디오로 녹화하면서 뇌파를 기록해 환자에게 증상이 발생하는 모습과 그때의 뇌파 변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비디오-뇌파검사(Video/EEG monitoring), 뇌전증이 일어나는 부위의 기능적 변화 유무를 보기 위한 뇌 혈류검사(SPECT) 및 뇌 대사작용(PET) 검사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40만 명의 뇌전증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의 상당수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발작이 완벽하게 조절되지 않더라도 대학에 갈 수 있고, 얼마든지 전문 직종에 종사할 수 있다. 간혹 약물 복용이 수업에 장애가 되거나 쉽게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부작용은 전문의와 상의해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항경련제 복용으로 대부분 치유 가능
모든 뇌전증 치료의 첫 단계는 약물치료로, 전체 환자의 약 70-80%는 일반적인 약물치료로 발작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또 그중 상당수는 일정 기간 투약 후 약물치료를 중단할 수 있으며, 발작에서 완전히 치유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약물치료로 잘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라 하더라도 최근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치료법들에 의해 상당수가 완치에 이르고 있다.
간혹 약물치료에 의해 충분히 조절 가능한 환자가 치료 도중 발작이 계속되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약물치료를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첫째는 약물의 종류 문제다. 현재 시판 중인 뇌전증 치료제는 수십 종에 이르며, 어떤 약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발작 조절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뇌전증은 특정 약으로만 잘 조절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뇌전증의 종류를 정확히 분류해 적절한 치료 약제를 선택해야 한다.
둘째는 약물의 용량이다. 많은 수의 환자들이 치료제의 영향으로 잠이 많아지거나, 어지럽거나, 위장장애 등을 경험하며, 이로 인해 자의로 약의 복용 횟수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뇌전증 치료제는 제대로 복용해야 치료에 필요한 혈중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처방대로 약물을 복용하기 힘들다면 반드시 먼저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셋째는 약물의 부작용 문제다. 일반적으로 뇌전증 치료를 시작하면 항경련제를 2-3년 이상 복용하는데, 항경련제는 결국 뇌의 전기적인 활동에 관여하므로 대뇌 활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개발된 항경련제들은 대뇌에 미치는 부작용이 적어서 비교적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으나, 항경련제를 과다 투여하거나 체질적으로 민감한 일부 환자에서는 항경련제를 장기간 투여할 때 지능 저하가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투약 전후 환자의 인지기능과 대뇌 활동의 저하가 있는지 자세히 관찰해 그러한 영향이 최대한 적은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는 약물의 혈중 농도 검사다. 예를 들어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취하는 정도가 다르듯 사람마다 약제의 요구량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약물의 혈중 농도를 검사해 약제의 항경련 효과가 제대로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수술치료, 신중하게 결정해야
최근 뇌전증을 수술로 치료해 성공한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뇌전증 수술을 고려하는 환자, 보호자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뇌전증 환자들이 수술적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약물을 선택해 충분한 용량으로 일정 기간 치료했음에도 뇌전증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이 그 대상이다. 또 난치성 뇌전증이라 해도 여러 검사를 통해 뇌전증을 일으키는 부위가 명확히 확인되고 그 부위에 수술적 접근이 가능할 때 수술 대상이 된다.
또한 뇌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는 수술로 제거할 경우 큰 장애를 남길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뇌전증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이 중요하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위한 특별한 치료법
기존의 어떠한 약물치료에도 조절되지 않는 일부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서는 최근 케톤 생성 식이요법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평상시 뇌세포는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금식으로 당이 고갈되면 지방으로부터 만들어진 케톤체들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이때 에너지 생산이 훨씬 증가해 뇌세포의 기능이 향상되고 항경련 작용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케톤 생성 식이요법은 정해진 비율에 따라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및 저단백의 식사를 유지해 항경련 효과를 지속시키는 치료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