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지 말고 맞서세요,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슬기롭고 성실한 파트너 박중원 교수



‘알레르기 행진’. 주워들은 이 한마디가 호기심폭탄 심지에 불을 댕겼다. 돼지고기 한 점에도 온몸이 근질거리는 처지라 관심이 더 치솟았는지도 모른다. 관련 정보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검색창에 이름을 적어 넣었을 뿐인데, 오만 가지 설명이 튀어나온다. 요컨대, “알레르기 증상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인데 가벼운 증상부터 단계를 밟아가며 식품 알레르기와 계절성 알레르기, 마침내는 천식까지 옮겨갈 수 있단다. 하지만 거짓과 과장이 넘쳐나는 넷 세상의 설명을 어떻게 다 믿겠는가? 이름난 알레르기 전문가 박중원 교수(알레르기내과)에게 검증을 재촉한다.

행진이란 말조차 낯선데, 교수님은 그걸 예측할 수 있는 물질까지 찾아내셨더군요.
습진이 기승을 부리다가 그게 수그러들 즈음에 피부염이 시작되고, 다시 비염과 천식으로 넘어가는 식의 알레르기 진행 양상을 일컬어 ‘행진’이라고 하죠. 하지만 저는 이 말을 자주 쓸 일이 없는 편입니다. 알레르기 행진은 주로 소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저는 성인들만 보거든요. 지난해에 우리 병원 알레르기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해서 학계에 보고한 물질도 콕 집어 행진을 예측하는 지표라기보다 알레르기 전반을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에 가깝습니다. 알레르기에 관여하는 특이항체는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거든요.

성인과 어린이의 알레르기는 양상이 완전히 다른가 봅니다.
어린 친구들이 앓는 알레르기 질환은 성장 과정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음식물에서 오는 알레르기만 하더라도 70%는 저절로 없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토피피부염이나 천식도 피부와 기관지가 성숙해지면서 차츰 스러지는 경우가 많고요. 반면에 성인에게 생긴 알레르기 질환은 아이들처럼 역동적으로 병변이 좋아지는 사례가 드뭅니다. 신체의 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추세인 탓에 한번 병이 생기면 고착화되기 쉽습니다. 기관지 기능이 감퇴하면서 천식이 심해지기도 하고 항생제나 진통제, 심지어 항암제 사용이 늘면서 약물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일도 많아요.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요인도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알레르기와 관련된 음식물들은 다양하고, 꽃가루나 집먼지진드기도 알레르기를 일으킵니다. 반려동물도 주요한 요인이지만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게 현실입니다. 참나무가 원인물질을 배출한다고 그걸 다 베어낼 수는 없죠. 찬바람이 호흡기 알레르기를 악화시키는 건 분명하지만 겨울에는 방 안에서만 지내고 여름에는 에어컨 이 지내는 게 가능할까요? 결국 규칙적으로 관리하면서 꾸준하게 치료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알레르기 질환이 심해지면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악화 요인을 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치료하고 조심하면 증상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질환을 앓는 분들은‘환자(patient)’보다 ‘고객(client)’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라는 말에는 다소 수동적인 어감이 배어 있지만, 고객이란 표현에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느낌이 묻어나잖아요. 한번 생기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고착화되기 십상인 성인 알레르기 질환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의료진과 환자가 파트너가 되어 서로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알레르기 약에는 내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잘 안 듣는다는 말들이 많더군요.
그렇지 않아요. 알레르기 질환에 널리 쓰이는 약제들, 특히 항히스타민제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어요. 최근에 개발된 알레르기 치료용 항체치료제 역시 특별한 위험요소가 없고요. 그 밖에도 요 몇 년 새에 알레르겐, 그러니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에 밀리지 않고 견뎌낼 힘을 키워주는 면역치료법의 효과에 대해 많이 알려져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아직 모든 알레르기에 다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반려동물, 꽃가루, 그리고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에는 아주 잘 듣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치료법이 있는데도 아토피를 고치러 공기 좋은 외국으로 나간다는 소릴 들으면 안타깝죠. 정확하게 진단해서 적절한 약제를 주사하기만 해도 그냥 좋아질 수 있으니까요.

지나친 염려가 도리어 효과적인 치료의 발목을 잡는 셈이네요.
스테로이드제제, 특히 피부연고에 대해서도 걱정들을 많이 하시지만, 의료진의 감독을 받아가며 적절하게 사용하면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큰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흡입하거나 분무하는 스테로이드제제는 부작용도 심하지 않아요.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 분들이 아나필락시스를 염두에 두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망설이는 분위기도 마찬가지예요. 백신에 들어 있는 폴리에틸렌글라이콜이나 폴리소르베이트가 문제인데, 여기에 민감한 환자는 이 분야를 전문하는 저도 평생 단 한 명 봤을 만큼 아주 드물거든요. 일반 알레르기 환자들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걱정이 많은 환자분들을 잘 설득해서 치료를 받게 하는 일도 만만치는 않으시겠습니다.
힘들기야 하죠. 그래도 설명을 잘 듣고 따라주셔서 치료 효과가 나타나면 질환을 보는 일이 흥미롭습니다.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피드백이 바로바로 오거든요. 숨찬 게 확 줄어들고, 피부 가려운 증상이 싹 없어지고, 기침이 줄어드는 식으로 증상이 좋아지는 게 한눈에 보여요. 5% 정도는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건 또 고민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돼요. 시쳇말로 ‘소확행’이라고 하던가요? 이렇게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이 분야에 아주 만족합니다.

일찌감치 그런 보람을 알아보고 서슴없이 이 분야를 선택하셨나 봅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이쪽을 택한 건 맞습니다. 인생은 결국 자기 선택이잖아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넉넉한 삶과 명예도 소중하지만 삶에는 그 밖에 다른 면들도 있으니까 이것저것 고려해서 방향을 잡아야 하죠. 이쪽 길로 들어서는 게 아무 위험도 없는 선택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뭐든지 다 불투명한 상황이라,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지 확신하기 어려웠어요. 남들이 안 가는 쪽을 고른 탓에 불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습니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해야 할까요?

알레르기 질환이 갈수록 많아집니다. 완전 정복까진 얼마나 걸리리라고 생각하세요?
‘정복’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매듭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나는 게 질병의 속성이거든요. 알레르기 질환도 그래요. 저를 포함해 수많은 전문가들이 죽어라 연구를 해왔지만 한계가 엄연한 게 현실입니다. 환자들은 뿌리를 뽑아주길 바라지만, 아직은 항체치료법으로도 알레르기를 완전히 청산할 수는 없어요. 병을 관리하면서 동행하는 콘셉트지, 완치의 개념은 아닌 거죠. 예방법을 찾아내는 쪽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어요.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막아줄 방법을 찾아낸다면 정말 획기적일 텐데 말이죠. 깊은 연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분야여서 앞으로 젊은 연구자들이 더 많이 뛰어들어 힘을 합쳐주면 좋겠어요.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명의의 특강│호흡기 알레르기 질환
삶의 질 좌우하는 불편한 증상, 검증된 치료로 관리해야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와 맑은 하늘이 매력적인 가을은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이지만,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 환자들에게는 외출에 주의해야 하는 시기일 수 있다. 차고 건조한 바람, 미세먼지, 가을 꽃가루 등 환자를 위협하는 원인물질이 많아 알레르기 증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중원 교수(알레르기내과)


자극 부위에 따른 병명
원인물질과 면역반응은 동일하다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은 흡입하는 집먼지(집먼지진드기, 반려동물)나 꽃가루, 미세먼지, 대기 오염 물질, 찬 공기, 호흡기 바이러스 등이 눈과 코의 점막이나 기관지를 자극해 알레르기 면역반응을 유발해 생기는 질환으로, 자극되는 부위에 따라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결막염, 천식으로 나뉜다. 세 가지 질환 모두 흔한 질환이며,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노인 환자에서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결막염, 천식은 질환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한 원인물질과 면역반응에 의해 일어나며, 한 환자에서 세 질환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다. 주로 막힘 증상과 과민반응, 그리고 분비물이 많아져서 문제를 일으킨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서는 콧물, 코막힘, 재채기, 코가려움증이 문제가 된다. 심지어 콧물이 뒤로 넘어가서 기침, 가래를 호소하기도 한다. 천식 환자는 기관지가 좁아져서 생기는 호흡곤란, 기침, 그리고 분비물인 가래가 많아져서 불편을 겪는다. 알레르기 결막염 또한 원인물질이 눈의 결막을 자극해 염증이 생기는 질환인데, 환자들은 주로 눈가려움증과 눈물 과다를 호소한다.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의 치료는 ① 약물치료와 ② 환경관리가 가장 기본적인 치료법이다. 그리고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반려동물이 알레르기 면역반응의 원인이 되는 경우에는 ③ 알레르겐 특이 면역요법을 통해 면역력을 키워 치료할 수 있다.


천식의 주요 증상
 □ 괜찮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소리가 그르렁거리거나 쌕쌕거린다.
 □ 잠잘 때 호흡곤란이 심해지고, 새벽에 잠에서 깬다.
 □ 운동할 때 쌕쌕거리고 갑자기 숨이 찬다.
 □ 감기를 앓고 나서 숨이 차거나, 기침이 오래간다.
 □ 스트레스나 담배 냄새에 노출된 경우 또는 춥거나 흐린 날씨에 숨이 차고, 쌕쌕거린다.

알레르기 비염/결막염의 주요 증상
 □ 콧물, 코막힘, 재채기, 코가려움증이 나타난다.
 □ 콧물이 뒤로 넘어가서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기침이 난다.
 □ 병이 오래 지속되면 냄새를 못 맡게 되고, 맛을 못 느낀다.
 □ 코 증상과 함께 눈이 가렵고, 눈물이 많이 나온다.
 □ 평소엔 괜찮으나 환절기나 꽃가루 시즌 또는 먼지나 대기 오염이 심할 경우에 증상이 나타난다.


약물치료
증상 없다고 중단하면 반드시 재발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의 원인물질은 매우 다양해서 이들 요인을 완벽하게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의 치료는 병을 완치한다기보다는, 꾸준하게 약을 사용해 증상을 조절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이 좋아져 불편한 증상이 없어지면 바로 치료를 중단하고, 증상이 있을 때만 약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증상에 따라 임의로 약을 중단하면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이 다시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 치료에 핵심적인 약물은 국소적으로 작용하는 스테로이드제(흡입 스테로이드제, 코에 뿌리는 스테로이드제)와 항히스타민제다. 스테로이드라는 이름만으로 지나치게 약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 약제는 장기간 규칙적으로 사용해도 내성이나 습관성을 유발하지 않으며, 부작용도 거의 없다. 따라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먼지진드기, 반려동물, 꽃가루, 미세먼지, 대기 오염 물질, 찬 공기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나 당뇨병, 비만, 대사증후군, 비타민D 결핍에 의해서도 알레르기 면역반응이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 환자들은 당뇨병이나 대사증후군 같은 질환이 동반되어 있다면 함께 치료해야 한다. 또한 독감에 걸릴 경우에는 심한 천식발작이 유발되므로 천식 환자들은 반드시 매년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
검증되지 않은 치료로 위험해지기도

대부분의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은 생사를 가를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으나, 증상이 금방 나아지질 않아 삶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많은 천식 환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는 그 자체로 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 근래에는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의학 정보가 넘쳐나고 있는데, 상당수는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므로 섣불리 시도하지 말고 주치의와 먼저 상의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먼지, 찬바람, 감기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비만, 당뇨병, 대사증후군, 비타민D 결핍증도 천식을 악화시키고 조절을 어렵게 하므로 이들 질환이 동반되어 있는 경우에는 같이 치료해야 한다. 또한 독감에 걸릴 경우에는 심한 천식발작이 유발되므로 천식 환자들에게는 매년 독감 예방주사 접종이 필수다.


환경관리
원인물질 노출 줄이는 것이 핵심

호흡기 알레르기 환자의 상당수가 집먼지진드기, 애완동물, 꽃가루에 과민반응을 나타내며, 이들 원인물질에 노출되면 질환이 악화된다. 따라서 적절한 실내 환경관리는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의 중요한 치료법 가운데 하나다. 집먼지진드기나 반려동물이 원인인 경우에는 침구류와 의복을 자주 세탁하는 것이 좋으며, 알레르겐 비투과 침구커버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 흡연, 심지어 간접흡연에 의해서도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이 진행되므로 반드시 금연을 하고 담배 연기를 회피해야 한다.


알레르겐 특이 면역요법
원인물질 투여해 면역력 향상

적절한 환경관리를 하더라도 집먼지진드기에 대한 노출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 또한 반려동물, 꽃가루가 알레르기 면역반응의 원인물질인 경우에도 이를 모두 회피하기는 쉽지 않다. 질환을 악화시키는 알레르기 원인물질이 확실한 환자들은 집먼지진드기, 꽃가루, 반려동물 추출액 등의 원인물질을 소량으로 천천히 증량하면서 투여해 이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다. 이러한 알레르겐 특이 면역요법은 피부에 직접 주사를 맞는 피하면역요법과 혀 밑에 약을 넣어서 흡수시키는 설하면 역요법이 있다. 두 가지 면역요법 모두 효과가 매우 좋으며, 약의 투여 방법과 기간이 다르므로 환자의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치료법은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호흡기 알레르기 질환은 각각의 환자에게 사용해야 하는 약제의 종류와 용량에 큰 차이가 있으며,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에 따라 적절한 환경관리법도 달라진다. 세브란스병원 알레르기·천식센터는 환자의 알레르기 원인물질과 증상을 면밀히 파악해 적절한 약물치료와 면역요법, 환경관리법 안내 등 환자 맞춤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