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기 장착, 림프종과 싸울 용병을 기른다
CAR T세포 치료로 혈액암 치료의 새 길을 여는 김진석 교수
20대 꽃다운 젊은이들이었다. 림프종이 이미 4기까지 진행되어 예후가 더없이 나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었다. 쓸 수 있는 표준치료로는 완치를 기대할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절박하게 길을 찾던 김진석 교수(혈액내과)의 레이더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반가운 정보가 걸렸다.
독일에서 나온 논문에서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말기 환자에게 표준보다 더 강력하게 약제를 쓰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환자의 상태가 시시각각 나빠지는 터라 이것저것 따지고 잴 형편이 아니었다. 곧바로 새로운 치료법으로 치료에 들어갔다.
눈에 띄게 차도가 있었습니까? 결과가 궁금합니다.
약효는 좋았지만, 치료제 관련 독성으로 정말 안타깝게도 두 분 다 놓치고 말았습니다. 남자 환자가 먼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사이에 폐렴이 생긴 여자 환자가 “저도 그렇게 되는 걸까요?”라고 묻는데 어찌나 참담하던지…. 같은 질환으로 병원을 드나들며 정이 들었던 또래 친구를 떠나보낸 심정이 어땠겠어요? 저한테도 큰 충격과 상처로 남아 벌써 1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자책감과 아쉬움이 정말 말할 수 없이 컸어요.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저렇게 한번 해볼 걸….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필요가 있을까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셨던 건데요.
물론 환자의 상태와 형편이 뭘 해볼 수도 없을 만큼 나쁘기는 했어요. 요즘처럼 표적치료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독성이 많은 항암제로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하는데, 당시에는 별의별 수를 다 써도 재발하니까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죠. 암이 많이 진행돼서 치료를 해봐야 어려우니 치료를 포기하자고 먼저 말하기는 어렵지요. 또 표준치료법으로는 예후가 불량할 것이 뻔히 예측되는데 그 표준치료를 그대로 하는 것도 의사 입장에서 괴로운 일입니다. 세상에 더 살고 싶지 않은 환자가 어디있겠어요. 100세를 바라보는 말기 환자라 해도 삶을 갈구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일 겁니다. 그걸 아는 의사가 이만큼 했으면 됐다고 간단히 마음을 정리해버릴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는 맞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두고두고 안타까울 수밖에요.
지금도 림프종은 그때만큼 버거운 적수입니까? 현실을 알고 싶습니다.
제가 맡은 분야는 혈액암 중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에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혈액암 가운데 제일 흔한 림프종과 다발골수종을 주로 보고 있으니까 환자는 다른 교수님과 비교해 많은 편이에요. 예전에는 좋은 치료법도 없고 환자 수도 많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최근 형세는 많이 달라져서 차츰 승기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표적치료제를 비롯해 좋은 신약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CAR T세포 치료제처럼 새로운 치료법들도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약물치료만 가지고 완치에 이르는 환자가 적지 않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제가 외래에서 하루에 환자들을 60~70명씩 만나는데, 그때마다 적어도 한두 분께는 “이제 완치되었으니 병원에 그만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릴 정도입니다.
표적치료나 세포치료는 익숙한데, ‘CAR T세포’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림프종 환자에서는 암세포를 공격해 죽이는 특공대 역할을 해야 할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T림프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병이 진행하게 됩니다. CAR T세포란 이렇게 암세포랑 친구가 돼버린 T림프구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서 본래의 성질을 되찾게 해주는 치료법입니다. 적절한 조작을 통해 암세포를 재빨리 파악해내고 선택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용병으로 바꿔주는 거죠. 국내에서는 두 번 재발을 경험한 환자들에게 세 번째 치료제로 사용하도록 허가 및 보험이 되어 있는데, 치료받은 환자 가운데 3분의 1정도는 완치에 이를 정도로 효과가 좋습니다. 기존의 항암치료로는 완치를 거의 기대할 수 없었던 환자들이기 때문에 매우 획기적인 치료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최신, 최첨단 치료법인 셈이군요.
그렇죠. 워낙 준비할 일도 많고 규제도 까다로워서 아직은 몇몇 대형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합니다.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에서도 국가의 까다로운 허가와 전문가 교육을 비롯해 필요한 요건들을 모두 채우고 언제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채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혼자 어찌해볼 수 있는 치료법이 아니어서 진단검사의학과, 중환자실, 감염내과, 신경과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CAR T세포 치료팀을 짜서 서로 소통하며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고 센터가 활성화되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많은 불응 재발 환자의 치료를 담당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분의 1이라면 대단한 완치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나머지 3분의 2가 걱정됩니다.
그분들에게도 머잖아 희소식이 전해지리라고 봅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대다수가 효과적인 혈액암 치료제를 먼저 내놓으려고 경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신약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주 무대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서울’을 통하지 않고는 신약이 나올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요. 저희 혈액내과 역시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신약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는 국제적인 주요 임상시험에 대부분 관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환자분들의 치료 성적이 매우 좋게 보고되고 있어서 표준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환자나 CAR T세포 치료에도 재발하는 환자에게는 임상시험을 통해 신약에 접근하는 것도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툭하면 환자를 잃곤 하던 시절에 공부했던 교수님으로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지시겠어요.
혈액내과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다들 제정신이냐는 반응이었어요. 림프종이니 다발골수종 같은 병은 변변한 약이 없어서 웬만하면 독한 항암치료만 받으면서 환자나 의사 모두 고생하다가 다 돌아가시는 형국이었거든요. 그런데 2000년 정도부터 혈액암 분야에 표적치료제가 쏟아져 나오고 생존율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바로 그 시기에 레지던트 과정 마치고 전문의로 환자를 직접 책임지고 보게 되었으니 의사로서는 굉장한 혜택을 받은 셈이죠.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익히는 과정이 녹록하진 않았어요. 그 당시 국내에는 이러한 새로운 치료법이나 새로운 개념을 자세히 지도해줄 분이 없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에 틈날 때마다 외국에서 열리는 학회나 심포지엄, 연수강좌를 찾아다녔죠. 대한민국의 의료를 선도하는 세브란스병원의 정신을 알고 있다면, 대충 하거나 적당히 해서는 안 되니까요.
까다로운 분야를 선택해서 평생 고군분투하셨는데, 후회는 없으세요?
제가 젊어서는 치료 여건도 나빴고 저의 치료 경험도 적어서 고생깨나 했습니다. 완치되든 돌아가시든 모두 제 손에서 판가름이 나는 터라 환자들과 정도 많이 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돌아보면 이 길을 택하길 잘했다 싶어요. 내과 쪽에서는 드물게 수술적인 방법 없이 약만 가지고 암과 직접 싸워서 완치시킬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5~6년씩 치료하다가 마침내 완치됐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까요?
일은 고되지만, 저로서는 완치되는 환자들을 볼 때 만족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주는 기쁨이자 큰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의의 특강 | 림프종과 CAR T세포 치료
T세포의 공격력 되살리는 개인 맞춤형 면역치료
CAR T세포(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는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재발성 또는 불응성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 환자에게 다시 한번 완치의 희망을 밝혀주는 최신 치료로, 지난 4월 보험 급여가 시작되어 보다 많은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림프종은 우리 몸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으로, 림프구가 주로 림프절에 위치하므로 림프절 종대로 환자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일반 장기에도 림프구가 있기 때문에 신체의 모든 부위에서 림프종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환자에서는 발열, 야간 발한, 체중 감소 등 전신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만으로는 림프종을 진단할 수 없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CT나 PET-CT 등 영상검사로 확인된 비정상적인 림프절 또는 병변 부위의 생검을 통해 림프종의 아형을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림프종 치료의 시작
정확한 아형 진단
림프종은 조직학적 분류에 따라 크게 호지킨림프종과 비호지킨림프종으로 분류하며, 95% 정도가 비호지킨림프종이다. 호지킨림프종과 다르게 비호지킨림프종은 임상적, 조직학적으로 매우 다양한 아형이 있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발생 빈도가 증가하며, 최근에는 매년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비호지킨림프종은 B림프구에서 발생하는 B세포 비호지킨림프종과 T림프구에서 발생하는 T세포 비호지킨림프종으로 분류되며, 80%가 B세포 비호지킨림프종이다.
임상 양상에 따라서는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른 공격형 림프종과 진행 속도가 비교적 더딘 지연형림프종으로 분류된다. 공격형림프종에 속하는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광범위큰B세포림프종)이 가장 흔한 아형이다. 소포림프종(여포성림프종)과 같은 지연형림프종은 병기가 낮은 경우 치료 없이 경과 관찰도 가능하지만,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 같은 공격형림프종에서는 적절한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1기에서도 급격하게 병이 진행하므로 1기부터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권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호지킨림프종에서 최선의 치료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아형의 진단과 병기, 환자의 연령과 전신 상태를 고려한 개별적인 최선의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CAR T세포 치료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 환자의 새 희망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은 일반적으로 현행 표준요법인 3주 간격의 R-CHOP(표적치료제 ‘리툭시맙’ + 3개의 항암제 및 스테로이드) 항암치료를 하는데, R-CHOP 치료로 약 70%의 환자들이 완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치료에 불응이거나 완전 관해에 도달했다가 재발할 때에는 구제항암치료를 시행한다.
이러한 구제항암치료 및 자가조혈모세포이식으로 또 다시 약 30%의 환자에서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나, 구제항암치료에 반응이 불량한 환자 또는 신장이나 심장 등에 기저질환이 있거나 70세 이상의 고령에서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할 수 없으므로 완치까지 기대하며 치료하기에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2022년 4월부터 국내에서도 CAR T세포 치료제가 보험 급여를 받아서 이러한 구제항암치료에 불응이거나 자가조혈모세포이식 이후 재발하는 환자도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T세포를 추출해 조작한 CAR T세포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CAR T세포의 정확한 명칭은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로, 치료의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 몸에 암이 생기면 우리 몸 안에 있는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이상세포라고 인지하지 못하게 되므로 T세포가 암세포를 제거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CAR T세포 치료는 환자의 T세포를 추출해 암세포 표면에 있는 특이항원을 선택적으로 잘 인지해 공격할 수 있도록 조작한 CAR T세포를 만들어 다시 우리 몸에 넣어주는 과정을 통해 우리 몸에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세포치료의 하나다.
미국에서는 세 종류의 CAR T세포 치료제가 승인되어 있으나, 현재 국내에서는 ‘킴리아(티사젠렉류셀)’ CAR T세포 치료제만 2회 이상 전신치료 후 재발성 또는 불응성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 환자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킴리아주를 제조하기 위해 환자의 말초혈액에서 적절한 양의 림프구를 채취해 얼린 상태로 미국으로 보내고, 이후 미국에서 T세포를 분리한 다음 유전적으로 조작해 CAR T세포 치료제(킴리아주)로 만든 뒤 다시 얼린 상태로 한국으로 보낸다. 이론적으로는 이 제조 과정에 3~4주가 소요된다.
CAR T세포 치료제를 환자에게 투약하기 전에 적절한 치료 전 전처치(림프구 제거 화학요법) 항암치료를 시행해 환자 몸에 남아 있는 림프구를 제거한 다음 CAR T세포 치료제를 녹여 환자에게 주입한다. CAR T세포 치료 역시 동반되는 합병증으로 사망하거나 CAR T세포 치료에 불응으로 다시 재발할 수 있지만, 3차 치료제로서 기존의 항암치료와 달리 약 30%의 환자에서완치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치료로 볼 수 있다.
획기적 치료의 한계
차세대 CAR T세포 치료제로 넘어선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 CAR T세포 치료제에 따른 합병증이 아직 매우 높아서 CAR T세포 치료제 투입 후 몸에서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면서 사이토카인폭풍과 같은 ‘사이토카인방출증후군’ 또는 신경계 독성이 발생하거나 CAR T세포 치료제 투입 후 장기간의 호중구감소로 중증 감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치료 초기 6개월 내에 약 30~40%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이러한 CAR T세포 치료제의 합병증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개선시킨 차세대 CAR T세포 치료제가 국내외에서 개발 중이므로 향후 CAR T세포 치료제의 치료 성적도 많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현재는 재발성 또는 불응성 미만성거대B세포림프종 환자에서 3차 치료제로 승인되어 있지만, 최근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고위험군 환자에서 1차 재발한 시점에 기존의 표준치료보다 더 우수한 치료 성적을 보이고 있어서 향후에는 CAR T세포 치료제가 1차 재발 시 2차 치료제로 사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교한 CAR T세포 치료와 신약 임상시험으로
생존율 향상에 도전하는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세브란스병원은 1981년 국내 최초로 조혈모세포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관으로, 혈액내과에서 매년 100건 이상의 조혈모세포이식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CAR T세포 치료는 자가조혈모세포이식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시행되는 세포치료로,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조혈모세포이식팀과 CAR T세포 치료팀은 이러한 다년간의 조혈모세포이식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킴리아주가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른 제 1호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허가받았고, 엄격한 사후관리가 요구되고 있어서 CAR T세포 치료를 수행하려고 하는 모든 병원은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엄격한 절차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한다. 킴리아주를 제공하는 제약사에서도 해당 병원 관계자들의 교육과 시설 평가를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병원에서만 CAR T세포 치료를 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러한 모든 제도적 승인 절차를 완료했고, 내부적으로 치료지침을 마련하고 관련 의료진들에게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에서는 CAR T세포 치료제에 필적하는 효과를 보이며 최근 개발되고 있는 이중항체 등 신약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국제적인 임상시험에 참여해 일부 CAR T세포 치료를 받기 어렵거나 CAR T세포 치료 후 재발한 환자들에게도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