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도전으로 쌓아올린

최고, 최초의 금자탑


두경부암 로봇수술의 개척자이자 선구자 김세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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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를 하는 국악인이었다. 담배를 즐겨 태우는 평생의 습관이 결국 암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후두를 다 들어내는 큰 수술이었지만, 다행히 과정과 결과가 모두 깔끔했다. 5년이 넘도록 재발도 없었으니 의사로서는 백점 만점에 백점, 더할 나위 없었다. 환자의 생각도 그랬을까? 소리꾼에게 후두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의기소침해지고 우울감이 찾아들었다. 만사에 의욕을 잃고 힘겨워하다 끝내 세상을 등졌다. 수술과 치료를 맡았던 김세헌 교수(이비인후과)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암을 깨끗이 제거했고 재발도 없었다면 환자로선 가장 성공적인 치료 아닌가요?

두뇌 아래에서 가슴 위까지를 두경부라고 부르는데 혀, 편도, 혀뿌리, 후두처럼 중요하고 복잡한 장기들이 여기 다 모여 있습니다. 어디 한군데라도 탈이 나면 삶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이 가게 마련이죠. 게다가 수술도 좀 까다로운 게 아니에요. 워낙 좁고 깊은 부위들이어서 기능을 살리면서 암을 제거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벽을 다 부수고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한 뒤에 망가진 부분을 다시 재건해주는 방법뿐이어서 먹고, 말하고, 숨 쉬는 따위의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숱하게 많았어요. 의사의 입장에서도 과연 이게 최선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죠.


‘예전에는’이라고 하시네요? 그럼 지금은 달라졌다는 뜻인가요?

입을 통해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로봇팔과카메라를 넣어서 치료하는 수술법이 나오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10배로 확대된 3차원 영상으로 환부를 들여다보면서 기구를 조작하는 까닭에 수술의 완성도나 환자 안전, 신체적 부담 면에서 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된 거죠. 후두암만 하더라도 3-4기면 장기를 다 들어내는 게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로봇수술로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고 기능은 최대한 살려냅니다. 수술 뒤에도 목소리가 유지되고 음식도 편하게 드실 수 있죠. 완치율도 높고요.


로봇으로 수술하게 되면서 온갖 난제들이 단번에 싹 해결됐군요.

‘단번에’는 아니었어요. 로봇수술을 시작한 뒤로 여태까지 여러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하면서 성장해왔다고 하는 게 정확할 거예요. 처음에 나온 로봇은 복강이나 골반 쪽을 수술하는 용도여서 덩치가 상당히 컸어요. 조그만 입을 통해 로봇팔을 들여보내야 하니까 비교적 가까운 편도나 혀뿌리에 있는 암을 처리하는 게 고작이었죠. 그런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노출이 어렵고 공간이 제한적이라는 걸림돌이 있기는 하지만 더 깊숙한 후두나 하인두쪽도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그래서 세계 최초로 하인두암 로봇수술을 시도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로봇수술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가 한결 넓어졌겠어요.

무엇이든 빨리 배워서 발전시키는 게 한국인의 장점이잖아요. 의사들도 그래요. 제아무리 선진적인 기술이라고 해도 금방 따라잡죠. 병기가 진행된 환자들을 로봇으로 수술하는 프로토콜도 세브란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어요. 초기에는 1-2기 환자들만 로봇으로 수술할 수 있었어요. 한계가 명확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임상연구보호센터(IRB)의 허가를 얻어서 3-4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로봇수술을 하는 연구를 2015년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3년여를 노력한 끝에 항암치료로 종양의 크기를 줄인 뒤에 로봇으로 깨끗이 제거하고 필요에 따라 항암 · 방사선치료를 추가하는 방식을 정립했습니다. 


로봇을 만들어낸 나라보다 세브란스병원이 먼저 새로운 수술법을 고안해낸 셈이네요?

개발 국가인 미국보다 2년 늦게 로봇수술을 도입했지만 재빨리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켜서 도리어 앞서나가게 됐다고 봐야죠. 병기가 진행된 환자를 수술하는 프로토콜 얘기는 이미 했습니다만, 후두나 하인두 쪽 로봇수술도 세계에서 저희가 가장 먼저 시작했거든요. 팔이 세 개로 늘어나고 자유롭게 굽어지는 내시경이 들어가서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단일공 로봇이 개발되자마자 세브란스가 세계 유수한 병원들을 제치고 먼저 들여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실적과 평판이 반영된 덕분일 겁니다. 이 로봇을 활용한 수술 역시 저희가 표준 기술을 확립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가 수두룩하네요. 하지만 환자들로서는 치료 성적에 더 관심이 많지 않을까요?

진행된 병기, 가령 편도나 혀뿌리에서 발생한 구인두암 3-4기의 병변은 치료 성적이 나쁩니다. 암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경우에도 치료 성적이 65%를 넘지 못하죠. 그런데 선행 화학요법, 로봇수술, 방사선 치료로 이어지는 세브란스의 프로토콜을 진행한 결과 5년 생존율이 78%까지 올랐어요. 세계적인 암 전문기관의 성적도 50%를 밑돌고 가장 우수하다는 병원이 65%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10% 이상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엄청난 일이죠. 2018년에 이미 세계적인 학술지에 발표된 사실입니다.


"처음에 나온 로봇은 복강이나 골반 쪽을 수술하는 용도여서 덩치가 상당히 컸어요. 조그만 입을 통해 로봇팔을 들여보내야 하니까 비교적 가까운 편도나 혀뿌리에 있는 암을 처리하는 게 고작이었죠. 그런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노출이 어렵고 공간이 제한적이라는 걸림돌이 있기는 하지만 더 깊숙한 후두나 하인두 쪽도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그래서 세계 최초로 하인두암 로봇수술을 시도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교수님도 애초에는 전통적인 방법을 쓰시지 않았나요? 어떻게 로봇수술을 만나셨어요?

로봇수술은 2006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처음 시작됐어요. 논문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현지 의사들도 기술을 배우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판이라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지만 일단 덤벼든 거죠. 과정이 까다로웠어요. 사물을 가지고 훈련하는 드라이 랩을 마치면 돼지를 대상으로 연습하고, 다시 카데바 실습까지 거쳐야 하죠. 처음에는 참관만 시키더니 나름대로 경험과 숙련도를 갖춘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차츰 신뢰를 갖더군요. 그렇게 자격증을 받고 2008년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로봇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기술과 무기를 갖추셨으니, 이제 거칠게 없으시겠어요.

40대까지만 해도 병과 싸워서 이기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암을 보면 닥치는 대로 떼어내고 몇 번을 재발하든 끝까지 없애려고 했죠. 그런데 갈수록 그런 태도가 환자에게 꼭 보탬이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암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초기라도 수술 결과를 100% 장담할 수는 없어요. 로봇이 들어오면서 수술 지평이 넓어지고 성과가 획기적으로 좋아진 건엄연한 사실이지만 여전히 예상을 뛰어넘는 부분들이 존재하거든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이 들면 의사로서의 욕심을 버리고 환자의 고통과 처지를 헤아려야 한다는 자각이 들더군요.



김세헌 교수(이비인후과) 포토그래퍼 최재인

명의의 특강  두경부암

두경부암 수술치료의 새 장을 열다


두경부암 치료는 2008년 경구강 로봇수술이 도입되면서 획기적 변화를 맞았으나 초기 암에서만 로봇수술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연세암병원 두경부암센터는 진행된 두경부암에서 인두와 후두의 기능은 최대한 살리면서 환자의 생존율을 20% 이상 증가시키는 새로운 수술적 치료법을 개발했다.




발생 위치

머리와 목에 생기는 암

두경부암은 머리와 목에 생기는 암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뇌와 빗장뼈 사이에 있는 구강, 혀, 잇몸, 입술, 침샘, 비강(콧속), 후두, 인두(공기와 음식의 통로) 등에 생기는 모든 암을 두경부암이라 총칭하며, 크게 구강암, 인두암, 후두암으로 나뉜다. 그중 인두암과 후두암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인 음식을 먹고, 말하고, 숨 쉬는 통로에 발생하는 암으로, 편도암과 혀뿌리암(설근부암), 성대 주변에 생기는 후두암, 그리고 음식을 식도로 전달해주는 하인두에 생기는 하인두암을 일컫는다.


주요 발병 원인

술과 담배, 인유두종바이러스

두경부는 우리가 흡입하는 유해물질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기 때문에 술과 담배가 두경부암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알려져 있다. 흡연 기간이 길고 흡연량이 많을수록, 술과 담배를 함께 즐길수록 발병 위험은 크게 높아진다. 실제로 음주와 흡연이 잦은 50대 이상의 남성이 두경부암 환자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젊은층에서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에 의한 구인두암이 증가하는 추세다.


주요 증상

목에서 만져지는 혹

두경부암 환자는 목에서 통증 없는 이상한 덩어리가 만져져 이비인후과를 찾았다가 암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두경부암이 목의 림프절로 전이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 외에 음식을 삼키기 어렵거나 식사할 때 입 안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경우, 잘 낫지 않는 구강 내 궤양, 구강이나 비강의 출혈, 목소리의 변화 등도 두경부암의 증상일 수 있다.


두경부암은 내시경검사로 암 의심 병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내시경검사는 금식이나 마취 등의 번거로운 과정 없이 비교적 간단하게 시행할 수 있으며 비용 부담도 크지 않으므로 위와 같은 증상이 있을 때는 암 조기 발견 을 위해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음주, 흡연, 가족력 등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다면 정기검진을 받는 것이 권고된다.


"두경부는 우리가 흡입하는 유해물질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기 때문에 술과 담배가 두경부암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알려져 있다. 흡연 기간이 길고 흡연량이 많을수록, 술과 담배를 함께 즐길수록 발병 위험은 크게 높아진다. 실제로 음주와 흡연이 잦은 50대 이상의 남성이 두경부암 환자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술의 어려움

로봇수술로 최대한 암 제거하면서 후유증 최소화

두경부암 중에서도 인두암과 후두암은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목 깊숙이 위치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턱뼈와 혀를 자르거나 후두를 자른 뒤에야 수술 부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암 수술 후에는 먹고 말하고 숨 쉬는 기능에 많은 장애가 발생했다. 그래서 기능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공인 구강을 통해(경구강) 최소 침습적으로 접근해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로봇수술이 도입되면서 두경부암 수술도 크게 달라졌다. 경구강 로봇수술은 사람 손 대신 입 안으로 수술용 내시경과 얇은 로봇팔을 넣기 때문에 최소 절개만으로 수술이 가능하다. 수술용 내시경을 통해 인두와 후두의 병소를 시야가 닿지 않았던 부분까지 최대 10배까지 확대해 3차원으로 볼 수 있으며, 로봇팔은 좁은 공간 안에서 수술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동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수술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동시에 암 환자의 생존율을 증가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수술 방법이다.


경구강 로봇수술은 10년 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브란스병원 김세헌 교수가 시작했으며, 그간 30여 편의 SCI 논문을 통해 수술의 우수성을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원발 병소의 크기가 작은(T1, T2) 초기의 인두암(편도암, 설근부암, 하인두암)과 후두암에서만 경구강 로봇수술을 시행할 수 있었다.


진행된 암에 로봇수술 적용

환자 생존율 20% 향상

원발 부위에서 많이 진행된 인두암과 후두암(T3, T4 병기)의 경우, 대부분 인두와 후두를 적출하는 수술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수술은 인간 생활에 필수인 먹고 말하고 숨 쉬는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고식적 방법의 수술을 포기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에 의존해왔다. 세브란스병원 김세헌 교수팀은 2015년부터 그동안 초기 인두암과 후두암에서만 시행되던 경구강 로봇수술을 진행된 암에서도 적용해, 먹고 말하고 숨 쉬는 인두와 후두의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환자의 5년 생존율을 20% 이상 증가시키는 새로운 수술적 치료법을 개발했다. 


우선 항암치료로 종양의 크기를 줄인 후, 경구강 로봇수술로 인두와 후두의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원래 암이 있던 부위를 수술적으로 절제하고, 적출된 병변 조직을 분석해 개인별로 맞춤형 방사선치료를 하는 방법이다. 항암치료와 로봇수술, 그리고 방사선치료의 다학제 치료를 통해 그동안 치료 한계에 부딪혔던 진행된 인두암과 후두암의 치료 성적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치료 방법을 보고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다수의 국제학술지에 게재되었다. 또한 두경부암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세계학회인 국제두경부암학회(IFHNOS)를 비롯해 2019년 유럽이비인후과학회, 2019년과 2022년 국제구강암학회(IAOO) 등 주요 국제학회에서 기조 강연으로 초청받음으로써 명실공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치료법이 되었다. 아울러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는 2011년부터 매년 국제두경부암로봇수술 학회를 개최해 최신 로봇수술 지식을 전파하고, 로봇수술 트레이닝 시스템을 만들어 세계 두경부암 로봇수술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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