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내분비과 김호성 교수
“한국인의 정상치를 확립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나이에 따라 키는 얼마나 크고, 성장 속도 는 얼마나 빨라야 정상인지를 정립하는 연구죠.
우리 병원이 가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표 준치료법도 추려보고 싶고요.
연구실을 운영하기도 벅차고, 어린이병원 행정에 관여하게 되면서 시간 제약도 커졌지만,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보려고요.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빠르고 바른 치료가
내일 누리는 삶의 질을 좌우합니다
김호성 교수(소아내분비과)는 일주일에 네 차례외래에서 환자를 만난다. 갖가지 질환들을 보는데, 요즘은 성조숙증과 저신장증을 앓는 꼬맹이 환자들이 가장 많다.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가 무려 120명. 살인적인 숫자지만 그나마도 얼마 전부터 일손을 나눠서 그 정도다. 혼자 진료를 전담하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밤 9시까지 환자를 받았다. 아직 8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터라,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진료 순서를 앞당길 방법을 묻는 엄마아빠들의 안타까운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이처럼 환자와 보호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까닭은 무얼까? 김 교수의 답에서는 자부심보다 안타까움이 먼저 묻어난다.
교수님만의 독특한 치료법이나 남모르는 명약 같은 걸 가지고 계신가 봅니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요. 무엇보다 질병의 특성 때문일 겁니다. 성조숙증, 저신장증, 1형 당뇨 병, 터너증후군, 암 치료 이후에 발생하는 호르 몬 결핍 등 소아내분비 쪽에서 보는 질환들은 단 기간에 치료를 마치는 병이 아니거든요. 환자가 와서 병을 고치고 금방 빠져나가는 게 아니어서 적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순서 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저희도 무척 안타까운데, 현재로서는 이 분야의 뛰어난 전문 가를 열심히 키워내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 습니다.
부모님들의 과민 반응도 한몫을 하지 않았 을까요?
소아당뇨나 터너증후군처럼 심각한 질환보다 는 저신장증이나 성조숙증을 두고 그런 오해를 하기 쉬운데요. 이 질환들이 생명을 좌우하는 건 아니지만, 제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훗 날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저신장증만 하더라도 정상 범위에서 작은 게 아니라 병적으 로 키가 작은 질환이어서, 치료를 해주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됩니다. 성조숙증 역시 치료하지 않으면 생리가 일찍 시 작되고 성장이 멈추기 때문에, 키가 아주 작아 지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유방암이나 대사증후 군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각종 성인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아비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보다 전문가를 믿으세요.
의사의 말만 옳다는 건 독선이 되겠지만,
적어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진료에 임하는 것만큼은 어김없는 사실이니까요.”
다루시는 질환들이 모두 최근 들어 유난히 주목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어린 친구들 가운데서도 2형 당뇨가 갈수록 늘 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1 형 당뇨도 증가세고요.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세 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의 성조숙증 발병 사례가 평균의 20-30배에 이를 만큼 압도적으로 많다 는 점입니다. 이유를 캐고는 있는데, 공해물질 이나 환경호르몬, 영양 상태를 비롯한 여러 인 자들이 한데 어울려 영향을 주고 있는 게 아닌 가 추정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성조숙증으로 진료실을 찾는 어린 환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원인이 분명 한 편인가요?
여자아이의 경우 만 8세, 남자아이는 만 9세 이 전에 이차성징이 오는 걸 성조숙증이라고 합니 다. 빠르면 만 2-3세 때도 오고요. 원인이 뚜렷 하게 밝혀지는 사례는 여자아이 열에 하나, 남 자아이 열에 넷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MRI 는 원인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일단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면 곧바 로 치료를 시작해서 뼈 나이가 12세에 이를 무 렵 약을 끊습니다. 4주에 한 번씩 성선자극호르 몬 방출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는데, 투약을 끝 낸 뒤에도 6개월에 한 번씩 진료를 통해 잘 크는 지, 2차 성징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치료의 얼개 입니다.
대개 장기간에 걸쳐 치료가 이뤄지는 질 환들이라, 환자들과의 관계도 남다르시겠어요.
몇 년 전, 응급실로 들어온 1형 당뇨병 환자가 케 톤산혈증이 심한 상태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 어요. 때마침 회진을 돌다가 보고 곧바로 심폐소 생술을 시행했어요. 그 뒤로 저희 의료진이 사흘 꼬박 곁을 지켜서 살려냈죠. 끝까지 포기하지 않 고 물고 늘어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 실을 다시 확인했어요. 치료 과정에서 소아청소 년과 내 다른 분과의 자문이 필요했는데, 즉각적 이고 수준 높은 처치가 가능해서 많은 도움이 됐 던 기억이 납니다. 또 다른 예로 1형 당뇨병 투병 기간이 길어서 신장과 췌장까지 이식했던 한 친 구는 성실하게 관리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소아 청소년과 의사가 되었어요. 얼마 전부터 보고 있 는 초등학교 2학년 환자는 케톤산혈증으로 입퇴 원을 되풀이하는데, 형편이 어려워 지원 방안까 지 찾아주어야 해요. 환자들과 하나같이 끈끈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지만, 이렇게 더 어렵고 힘든 친구들과는 깊은 정이 들게 마련입니다.
질환이 어린 환자들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영향 이야기를 유난히 많이 하시네요.
1형 당뇨병처럼 평생 질환을 안고 사는 어린 친 구들이 갖는 심리적인 부담은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닙니다. 일단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싶 어 합니다. 노출은 곧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입 니다. 스스로 불편할 뿐,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 고 누구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지만 취업도, 결 혼도, 심지어 학교생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저혈당 주사제를 보건실에 맡기고 필요할 때 조 처를 취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기 일쑤 지요. 혹시 문제가 있을까 싶어 보건교사들이 꺼리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선 이런 환자들에 게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며 필요를 채워주려고 애쓸 뿐, 절대로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최근에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는 노력들이 이 루어지고 있어 더 좋아지리라 기대해봅니다
행정적으로도 중요한 책임을 맡으셨습니다. 진료와 연구까지, 압박이 크실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진료나 행정업무를 좀 줄이고 연 구에 더 투자하고 싶지만, 모두 제가 해야 할 중 요한 일이니까요. 한편으로는 충분히 쉬어야 열 심히 일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균형감각을 최대한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5년 전부 터 레슨을 받고 있는 클라리넷 연주, 성가대 활 동, 독서나 영화감상 같은 게 스트레스를 푸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당뇨 캠프나 교육 세미나, 매달 만나는 어머니회 모 임을 비롯해 어린이들이나 부모님들과 어울리 는 시간도 큰 도움이 되고요.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최재인
Dr. 김호성의 Choice 소아비만
무작정 약물치료를 앞세우진 않는다.
아주 심하 면 약을 쓰지만, 그걸로 유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활습관 교정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에 적어도 30-40분 이상 운동, 8시간은 숙면하도록 한다.
먹는 양을 조절하고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 게 한다. 텔레비전 보기나 컴퓨터 사용은 2시간 내로 제한하고 야외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어린아이들의 경우는 가족이 함께 달라져야 하 므로,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은 엄마와 아빠에 대 한 소아비만 교육을 실시하면서 정기적으로 모 니터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