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중요한 것은 정성
- 한태동 연세대 명예교수 -
100세를 앞둔 한태동 교수는 지금도 영자 주간지로 세상의 흐름을 읽는다.
인터뷰는 기부 이야기 대신 독립운동가로 사셨던 선친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문자 그대로 백발의 한태동 명예교수(연세대 신과대학)는
기부 이야기를 듣자마자 손사래부터 쳤다.
“물려받은 재산이니 그건 내 것도 아니오. 독립운동을 하신 선친 덕분에
저는 공부할 수 있었고,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그거 다 아버지거요.”
한태동 명예교수의 선친은 독립운동가 한진교 선생이다.
한진교 선생은 상해에서 해송양행(海松洋行)을 설립해 운영하며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한 교수의 입에서는
어린 시절 만났던 안창호, 윤봉길,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한태동 교수가 2015년 연세대학교 부지와 맞닿아 있는 454㎡
(137.33평)의 대지를 학교에 기부했을 때, 당시 김상근 신과대학
학장은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태동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그의 이름은 ‘이 땅의 모든 학자들이 넘어설 수 없는 산,
특별히 이 땅의 신학자들이 절대로 넘어설 수 없으나,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산’이라는 뜻의 일반명사입니다.”
그런가 하면 벤처 1세대로 다음커 뮤니케이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를 역임한 이택경 동문(연세대 컴퓨터과학 88)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신과대학 한태동 교수님의
인문교양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철학적인 내용의 수업이었는데,
사람은 모두 굉장히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100세 어르신 한태동 교수에게 한 지혜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한사코 말을 아꼈다.
“변하는 것이 인생이요. 말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고.
남 보는 것도 변하고 내 영혼도 변해요.
정말 인생 살아본 놈은 인생에 대해
한마디 하는 건 힘들다고. 변하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정성. 그때 그 지성으로 사는 거지.”
신학, 의학, 중국학, 갑골문자, 유불선 연구, 인지과학, 수학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학문적 ‘사고의 틀’을 제시했고,
세종대의 한글 창제의 음성학적 연구로 제24회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서재 책장에 있는 빛바랜 종이 파일이 그가 달려온 연구의 흔적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었다.
사모 홍근표 교수(기독간호대학교 명예학장)는 용인세브란스병원에
1억 원을 기부한 것은 옛 용인세브란스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용인세브란스에 가서 강의를 하며 간호사들을 만났는데,
그때 그분들이 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계셨어요.
그 기억이 나서 간호사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밖으로 한껏 피어난 봄을 내다보는 노부부의 얼굴에도 봄이 번진다.
두 분이 나누어준 봄으로 세상은 좀 더 밝아질 것이다.
한태동 연세대 명예교수
1957년 연세대 신학대학 교수로 부임해
신과대학장, 연신원장, 도서관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1990년까지 33년 동안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세브란스병원 건축기금으로 2000만 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발전기금으로 1억 원 등
총 1억 3200만 원을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