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최선으로 일군 따뜻한 세상


- 갑상선내분비외과 장항석 교수 -


 글. 정라희


사랑의 실천에 정해진 답은 없다.

장항석 교수는 자신의 자리에서 나눔을 행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고민했다.

비유하자면 물고기도 잡아주고 물고기 잡는 법도 알려주는 일이다.

의료 불모지로 날아가 갑상선암 환자들을 수술하는 한편,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의사로서의 최선은 그에게 나눔의 씨앗이자, 열매다.




다른 관점에서 시작한 의료봉사


2013년 여름, 장항석 교수는 몽골 국립암센터로 홀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직접 봉사처를 알아보고 7년에 한 번 돌아오는 안식월을 쪼개 자비로 나선 봉사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 명의 환자를 수술해야 하는 강행군. 이후로 그는 매년 개인 시간을 할애해 의료 불모지로 의료봉사를 나서고 있다.

휴양지에서의 휴식을 반납하고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면서 여러 건의 수술을 소화해야 하지만, 봉사를 통해 느끼는 보람이 다시금 휴가 기간을 봉사활동 일정으로 채우게 한다. 


“의과대학 재학 시절이나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들어온 후에도 봉사단을 통해 몇 차례 의료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보람이 컸지만, 현지 사정으로 인해 느끼는 아쉬움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봉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의료봉사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한 것은 2012년 아프리카의 사막지대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다.


“봉사라고 하면 생업을 내려놓고 헌신해야 한다고 여기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달라요.

의사 한 사람이 배출되기까지는 많은 사회적 자본이 투입됩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한국에서 의료봉사단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현지인들이 무더위를 뚫고 10km가 넘는 사막 길을 걸어 캠프를 찾아왔다.

하지만 언어 장벽은 의사소통의 한계를 가져왔다.

현지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설명한 진짜 고충은 사라지고 ‘배가 아프다’나 ‘머리가 아프다’ 같은 단순한 증상만 전달되었다.

지급한 약품을 환자들이 임의로 나누어 갖기도 한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의료봉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지 의료 수준을 높이는 시도


처음 몽골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현지 의료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여러 선진국이 몽골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의 봉사활동도 비슷한 유형일 거라 여겼던 까닭이었다.

현지인들이 보기에 기존 선진국 의사들의 의료봉사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장항석 교수는 사전에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기구로 수술을 집도하고 후속 조치까지 전달했다.

그 과정을 통해 현지 의료진들이 자신이 떠난 후에도 비슷한 사례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게 한 것이다.  


“현지 의료진에게 지식을 전달하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의료진들의 한국 연수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사실 현지에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양질의 의료기구가 드물거든요.”


그가 낙후한 의료환경에서도 어려운 수술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현지 의료진들도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현지 의료진들 사이에서 그의 수술은 참관 희망 일순위가 되었다.

그의 몽골 의료봉사 소식을 접한 카자흐스탄에서도 방문 요청이 이어졌다.

새해부터는 베트남에서도 의료봉사를 할 계획이다.



본업에 기반을 둔 나눔의 정신


그가 의료봉사에 뜻을 둔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의 부친인 장임수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故) 장기려 박사의 일곱 번째 제자다.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한 부친의 조언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봉사 철학을 세웠다.  


“봉사라고 하면 생업을 내려놓고 헌신해야 한다고 여기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달라요. 의사 한 사람이 배출되기까지는 많은 사회적 자본이 투입됩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역할이에요.”


갑상선암 권위자인 그는 자신을 찾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에도 전력투구한다.

난치성 갑상선암 연구소 설립에 손을 보태는 등 그동안 틈틈이 기부한 후원금도 어느덧 1,000만 원을 넘겼다.

이처럼 그에게 나눔은 일상의 연장선이다.

‘있는 자리에서의 최선’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에게서, 세상을 향한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