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주어진 인생, 그저 감사할 뿐

간이식수술 후 감사의 인생 사는 염동선 씨와 평생 주치의 이재근 교수 

염동선 씨는 2018년 2월, 의식이 없는 상태로 구급차에 실려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에 도착했다. 손쓸 도리 없이 망가진 간 때문에 수차례 응급상황을 넘기며 간이식수술로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한 그는 이제 감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 


두 달여 중환자실 치료 끝에 간이식으로 사선을 넘고
"갑자기 복수가 차서 체중이 100kg을 넘었어요. 몸이 심상찮다는 건 느꼈지만, 사업이 좀 휘청이던 때여서 일단 급한 일부터 마무리하자 싶어 병원 가는 걸 좀 미뤘지요. 그러다가 쇼크로 쓰러지면서 세브란스병원에 오게 됐습니다."
당시 염동선 씨는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간기능이 악화되면서 복수와 흉수가 차고, 간성혼수에 신장부전, 폐렴까지 동반되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유일한 치료법은 간이식뿐. 그러나 그의 몸이 수술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에 간 기증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군 생활 중이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주기 위해 특별휴가까지 나왔지만, 그 사이 잠시 호전됐던 동선 씨 상태가 위급해지면서 수술 계획이 불발에 그치는 일도 있었다. 수시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진들의 사투가 지속되는 가운데, 동선 씨는 두 달 만에 극적으로 뇌사 기증자의 간을 이식받을 수 있었다. “염동선 환자는 전신 상태도 위험했지만, 과거 장결핵을 오래 앓은 터라 복강 내부 유착이 심해서 수술 중 출혈 문제 또한 심각했습니다. 복벽 절개만 했는데도 피가 멈추지 않을 정도였어요. 먼저 간을 이식한 후 다발성 외상 수술에 사용되는 거즈 패킹까지 동원해 출혈을 최소화한 뒤, 혈액응고 인자가 교정되고 이식한 간이 기능하길 기다렸다가 이차수술로 전체 수술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재근 교수(이식외과)의 기민한 판단과 뛰어난 수술 실력,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염동선 씨는 마지막 사선을 넘었다.

제2의 삶을 선물해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간이식수술 후 염동선 씨는 완전히 달라졌다. 모범생 환자가 되어 이재근 교수의 지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사실 수술 전 한 2년 정도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잠시 술에 의존하는 날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절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운영 중인 회사의 형편은 별반 차이가 없고, 오랫동안 누워 있던 후유증 탓인지 아니면 면역억제제 탓인지 팔다리 신경이 약간 둔해지는 증상도 있지만, 지금 그의 삶에는 감사가 넘친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뇌사 기증자의 숭고한 나눔,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 이재근 교수의 헌신적인 수술과 치료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간이식으로 인한 진정한 변화는 바로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제 원래 삶은 그날 멈췄고, 지금은 그저 덤으로 주어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는 게 유일한 소원입니다."



간이식수술, 간질환 환자들의 마지막 동아줄
간이식수술의 베스트 닥터 이재근 교수
 

간이식수술은 약물치료로도 간기능이 회복되지 않을 때 시행되나요?
성인에서 간이식수술은 크게 간기능 저하로 인한 간이식과 간암으로 인한 간이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간기능이 망가져서 황달, 복수, 간성혼수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나타난 말기 간부전(비대상성 간경변) 또는 간질환이 없던 환자에서 급성 간 손상이 발생하는 전격성 간부전 등 다른 치료로는 손상된 간을 살릴 수 없을 때 간이식을 받게 됩니다. 우리나라 성인 간이식의 원인은 약 45%가 간암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B형 간염과 알코올성 간질환, C형 간염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소아에서는 선천성 담도폐쇄증이 가장 흔하며, 유전적 질환이나 대사성 질환으로 간이식을 받게 됩니다.

간암 환자들은 어떤 경우에 간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나요?
과거에는 암 덩어리가 작고 암이 혈관을 침범하지 않은 경우에만 간이식수술이 가능했지만, 진행된 간암에서도 간이식을 했을 때 치료 성적이 더 좋다는 결과들이 나오면서 적응증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혈관을 침범한 4기의 진행성 간암에서도 항암방사선동시요법, 색전술 등으로 병기를 낮춘 뒤 간이식을 시행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병든 간을 통째로 떼어내고 건강한 간을 이식하는 간이식은 색전술이나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간절제술 같은 일반적인 간암 치료에 비해 재발률이 훨씬 적습니다.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
# 2015년_세계최초_뇌사자폐와_생체기증자간_동시이식_성공
# 2016년_국내최초_기증자_로봇간절제술_성공_2021년_국내최초_100례달성
# 2018년_혈액형부적합간이식_100례달성
# 탁월한팀워크_유기적협진으로_고난도_간이식수술_선도
# 수술전상담_수술후면역억제제관리_금주교육_간암관리_환자와동행하는_평생주치의

뇌사 기증자 간이식과 생체 기증자 간이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살아 있는 가족이나 친지의 간 기증이 필요한 생체 기증자 간이식은 기증자 간의 30% 이상을 남겨두고 수혜자의 체중에 비례해 간의 일부를 이식합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체 부분 간이식이지요. 적합한 생체 간 기증자가 없는 경우에는 뇌사 기증자 간이식이 필요한데요. 대체로 뇌사 기증자의 간 전체를 이식하기 때문에 생체 부분 간이식보다 수술 자체는 쉬운 편입니다. 그러나 바로 옆 수술실에서 기증자의 간을 받아서 바로 연결하는 생체 기증자 간이식과 달리, 뇌사 기증자 간은 원거리에서 냉동 보관 상태로 운반되기 때문에 허혈 시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간이식 대기자에 비해 뇌사 기증자가 훨씬 부족해서 뇌사 기증자 간이식을 받는 환자들의 중증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아무래도 환자의 전신 상태가 상대적으로 더 양호할 때 이식을 받는 생체 기증자 간이식에 비해 뇌사 기증자 간이식의 회복 가능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겠지요.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많이 줄었다는 기사가 있던데,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원래도 뇌사 기증이 적은 편이었는데, 연명치료중단법이나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더더욱 줄어들어서 지금은 뇌사 기증자 간이식이 전체 간이식의 20%에도 못 미칩니다. 뇌사 기증자의 간은 간이식 대기자의 응급도를 평가한 멜드(MELD) 점수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데요. 미국에서는 평균 25점에 뇌사 기증자 간을 배정받는 반면, 우리나라는 워낙 뇌사 기증자가 부족해서 뇌사 기증자 간이식 환자의 멜드 점수 중앙값이 39점에 이릅니다. 40점이 최고 응급도니까, 정말 위급한 환자에게만 겨우 간이 배정된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간이식 대기 1순위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간이식을 못 받아서 중환자실에서 안타깝게 사망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장기이식 대기자들 가운데 이식을 못 받아서 돌아가시는 분이 하루 평균 6명입니다. 뇌사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사회적 관심이 정말 절실한 상황이죠.

A형 부모가 O형 자녀에게 간이식을 해줄 수 있나요?
혈액형이 다르면 간이식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여전히 많지만, 혈액형이 달라도 이식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이식 1-3주 전에 미리 탈감작요법을 시행하면 됩니다. 몸속 항체는 혈장교환술로 걸러내고, 리툭시맙(rituximab)이라는 약제를 투여해 혈액형에 대한 항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체 간이식의 약 25%를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혈액형 적합 간이식과 비교했을 때 이식 성적에 차이가 없습니다. 뇌사 기증자가 적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생체 기증자 간이식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사 기증자가 젊고 승압제 같은 약물이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간은 성인과 소아에게 분할 간이식을 하는데, 이 또한 이식 대기자에 비해 공여 간이 현저하게 부족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요.



생체 간이식 기증자의 조건

 ● 지병이 없어야 한다. 고혈압 같은 지병이 있더라도 약복용을 통해 잘 관리하는 등 건강 상태가 양호해야 한다.
 ● B형이나 C형 간염이 없고 간기능이 좋아야 한다. 지방간이 있는 경우 체중을 감량해 지방간이 줄어들면 기증이 가능해질 수 있다.
 ● 간의 혈관 구조가 이식에 적합해야 한다. 생체 기증자 간이식은 보통 간의 오른쪽을 기증하는데, 혈관 구조에 변이가 있으면 남은 왼쪽 간이 자라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기증자와 수혜자의 간 크기가 맞아야 한다. 기증자는 간 절제 후 남는 간이 전체의 30%가 넘어야 하며, 수혜자는 체중 대비 간의 크기를 뜻하는 GRWR(Graft to Recipient Wight Ratio) 수치가 0.8 이상이어야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다. 



간을 기증해도 기증자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나요?
기증자의 건강은 의료진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전에 정밀한 검사를 진행해 이식 후 건강에 큰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간이식을 시행합니다. 건강한 간은 60-70%를 절제해도 3-6개월이면 80-95%로 회복되니까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기증자의 간 절제에 복강경과 로봇이 도입되면서 복부 흉터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기증자 로봇 간 절제술은 사람의 손과 마찬가지로 정밀한 동작을 구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술 흉터뿐 아니라 출혈량과 합병증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기증자 합병증으로 담도 협착, 담즙의 일시적 유출 등이 발생할 수 있는데 약 1%의 낮은 확률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기증 초기에는 소화 불량 같은 사소한 증상도 주치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식 후 환자들은 어떤 점들을 특히 주의해야 하나요?
이식 후 6개월은 면역억제제 용량이 많아 감염에 특히 취약하므로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고 손 씻기, 마스크 착용 같은 위생수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또 면역억제제의 혈중 농도가 잘 유지되도록 약을 제때 복용하고, 외부 병원이나 다른 과를 방문할 때는 간이식과 면역억제제 복용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성분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약제나 즙은 면역억제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거나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함부로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이식받은 환자는 단 한 잔의 술이 곧 습관과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금주해야 합니다. 술은 기증자의 숭고한 희생을 헛되이 망치는 길임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과 깊은 애정으로 간이식 환자 살리는
이재근 교수(이식외과)


이재근 교수 프로필 바로가기


간이식은 한 가족 전체의 운명을 잠시 그의 손에 맡기신 거라는 겸손한 책임감으로 수술을 집도 하는 간이식 전문가로, 말기 간경변이 동반된 진행성 간암, 심각한 합병증이 동반된 급성 간부전 등으로 인한 고난도의 간이식수술에 집중하고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가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재근 교수는 의사의 존재 이유가 오직 환자라고 믿는 환자 중심주의자다. 간질환과 간이식에 대한 깨알 정보가 가득한 그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earnestliver)를 보면 환자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깊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