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자 돕는 그날을 꿈꿉니다


10년 전,중학생 정빈은 시든 풀처럼 기력없이 응급실로 실려왔다.숱한 검사 끝에 나온 진단은 악성림프종4

가족처럼 세심하게 돌봐준 유철주 교수 덕분에5년 전 완치 판정을 받고,지금은 간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진로 때문에 고민하면서 그는 결심했다.헌신적으로 돌봐준 세브란스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투병 경험을 값진 결과로 이어가기 위해 간호사가 되기로.




암환자로서 할 일을 정확히 따른 중학생 소년

겨우 중학교3학년이었던 정빈이에게 그해 여름은 가혹했다.살은10kg넘게 빠지고39-40도의 열이 났지만 동네 병원에선 큰 병원에 가보라고만 했다.목에 생긴 혹,계속되는 기침,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바닥난 기력.세브란스 입원 한 달여 만에 나온 병명은 악성림프종이었다.


“정빈이를 처음 만난 건2005년이었죠.폐까지 전이된 악성림프종4기였습니다.정빈이는 병원에서나 집에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씩씩하게 잘 따라주면서 암을 이겨낸 장한 아이입니다.” 유철주 교수는 이제는 완치된 정빈 씨를 과묵하고 속 깊은 단단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정빈 씨는14개월 동안 지독한 항암치료를 받았다.“확진받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유철주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오셔서 부모님을 밖으로 불러내셨어요.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항암치료는커녕 암이란 게 어떤 병인지 아예 몰랐어요.다만,그 상황과 분위기를 보면서 무언가 심각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죠.



힘들고 지칠 때 가끔 세브란스에 와서 수술실과 입원했던 병동을 둘러봐요

그때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제 투병 경험을 소아암 환자들과 나누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날이 오겠죠?

유철주 교수는 정빈이에게 병명을 정확히 알려주라고 부모님을 설득했다.정빈 씨는 그렇게 해준 유철주 교수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제 병을 제가 알아야 치료를 잘 따라갈 수 있잖아요.치료 방향을 잘 이끌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유 교수님은 가족 같은 분이세요.회진 도실 때는 언제나 웃으면서 안부를 물으셨죠.


어른들도 견뎌내기 힘든 항암치료를 받으며 그는 환자로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다.“주사나 약은 병원에서 알아서 다해주잖아요.환자로서 제가 할 일은 따로 있었어요.옆 병상의 보호자가 그러셨어요.‘버텨서 이겨내는 게 네가 할 일’이라고요.그 말씀 해주신 게 참 감사해요.그날부터 토하지 않고 먹을 만한 고단백 음식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지요.

밥은커녕 물까지 토해내면서 정빈 씨는 그제야 암의 끔찍함을 알게 되었고,어떻게든 이겨내기로 작정했다.수천 가지의 음식을 생각했고,토하지 않으면서 계속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추어탕을 떠올렸다.정말 엄청 먹었다.낫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잘 먹으며 버티는 것이었으니까.



간호사가 된 청년,소아암 환자 돕는 꿈을 꾸다

긴 투병 기간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항암제 부작용으로 머리칼과 눈썹이 모두 빠져 한참 민감한 사춘기 소년은 한없이 위축되었다.공부보다는 건강을 먼저 챙기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조언대로 정빈 씨는 특성화고에 진학했다.그런데도 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EBS강의를 들으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병치레 했던 시간을 저는 ‘잃어버린1년’이라고 불러요.그 고생을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가고 싶었습니다.세브란스에서 치료받을 때 언제든 제일 먼저 달려온 간호사들을 보면서 그분들은 정말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했어요.그래서 저도 그런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지요.” 첫 실습을 나가 병원에서 환자가 아닌 간호사로 있어보니,그 일은 정말 자신의 천직이었다.오랜 병원 경험 덕분에 환자의 일은 모두 내 일처럼 여겨졌다.환자의 필요에는 마음이 몸과 함께 반응했다.지금 그는 가족처럼 자신을 돌봐준 유철주 교수와 소아암 병동의 간호사들처럼 환자 곁을 지키는 진정한 간호인이 되어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에디터이나경|포토그래퍼박승주,최재인|스타일링최새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