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에서 받은 큰 사랑, 나눔으로 갚아갑니다!


- 25년째 꾸준한 기부 이어가는 양은자 씨 -


세브란스 재직 시절 양은자 씨는 사랑하는 세브란스에 보탬이 되고자 2001년부터 형편 닿는 대로 조금씩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부는 정년퇴직을 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5년간 이어진 꾸준한 나눔으로 그녀의 누적 기부액은 5,300만원을 넘어섰다.


 자녀의 탄생,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 시작한 기부


 양은자 씨는 1979년 9월 입사해 2022년 8월 정년퇴직을 한 세브란스의 

 전 직원이다. 그리고 세브란스 직원으로 살아온 세월의 절반 이상을 

 세브란스의 기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삶에서 처음 기부를 마음먹은 건 둘째를 출산하면서 부터다. 

 “첫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어요. 그러다 둘째까지 

 낳으니까 그 행복이몇 배로 커지는 거예요. 그 깊은 기쁨과 행복을 뭔가 

 의미 있는 일로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둘째가 태어난 1991년부터 

 아동복지재단에 정기후원을 시작했어요.”

 이후 꾸준히 기부를 이어간 은자 씨는 정기후원 10년째인 2001년,

 결연을 맺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후원이 종료되자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렸다. 

 ‘비록 작은 액수지만,이 기부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그때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막 시작된 세브란스 새병원 건축 공사였다. 

 당시 연세의료원은 본관 신축을 앞두고 세브란스 새병원 건축기금 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은자 씨는 자신이 그동안 세브란스에서 받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새병원 건축기금 기부를 시작했다.


 “당시 제가 서울역 앞에 있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빌딩 모양의 

 저금통을 가지고 있었어요. 기념일마다 그 저금통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었어요. 아이들 생일에는 애들 나이만큼 동전을 넣고, 

 아이들 졸업식이나 입학식, 결혼기념일, 그리고 좋은 일이 있는 

 날에도 동전을 모았어요. 세브란스를 찾아온 친척 어르신이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몇 만 원 쥐여주시면 반드시 10%는 떼서 저금통에 

 넣었고요. 그 저금 통을 꽉 채우면 40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이 모아지는데,

 그걸 들고 발전기금사무국을 찾아가곤 했지요.”


저금통 기부를 통해 나눔의 행복을 경험한 은자 씨는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암병원 건축기금, 의과대학 신축기부금, 암병원 발전기부금 등에 정성을 보탰고,

세브란스 교직원이 월급의 1%를 기부하는 1% 나눔운동에도 동참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오래 몸담았던 핵의학과에 감사의 마음으로 꾸준히 기부금을 보내오고 있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이 나눔을 지속할 거라는 약속과 함께.


삶의 전부인 세브란스를 향한 고마움과 사랑


25년간 이어진 꾸준한 나눔으로 그녀의 누적 기부액은 5,300만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은자 씨는 자신의 기부는 대단할 것 없는 작은 실천이 세월과 함께 쌓였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세브란스에서 보낸 40여년 동안 받은 사랑이 더 크다는 말도 거듭 강조했다.


은자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큰 화상을 입어 여러 달 입원치료를 받는 바람에 중학교에 진학하질 못했다.

뒤늦게 검정고시로 중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 지인을 통해 우연히 세브란스에 입사하게 됐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입사한 그녀를 부서 선배들은 삼촌, 이모의 마음으로 예뻐해줬다고.

“당시 선배들이 제가 일을 하면서 야간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업무적으로 배려해주셨고, 교복도 사주고 책도 사주셨어요.

그 배려와 응원에 힘입어 전문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지요. 감사하게도 이곳에서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났어요.

부족한 제가 세브란스에서 정년까지 보낼 수 있었던 건 이 기관이 저를 도와주고 배려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 삶의 전부인 세브란스에 기부로 작게나마 고마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